승부차기에 나서는 키커의 복잡한 심경이다. 객관적으로 승부차기는 키커가 유리하다. 대개 키커가 찬 슈팅은 시속 90~100㎞의 속도다. 골라인을 통과하는데는 0.4~0.5초가 걸린다. 골키퍼가 킥에 반응해 몸을 날리는 데까지는 0.6초가 필요하다. 골문 중간에 서 있는 골키퍼를 피해 좌우 구석으로 공을 찰 경우 성공률은 올라간다.
그럼에도 키커는 불안해한다.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사실이 몸을 옥죈다. 골을 넣으면 본전이다. 실축하거나 골키퍼에게 막히면 역적이 된다. 키커로서는 모든 것을 걸어야만 한다. 승부차기를 11m의 러시안룰렛이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승부차기의 부담감을 극복한 이들도 있다. 킥을 하기전 억지스러운 제스처를 하거나 승부차기를 성공한 뒤 인터뷰에서 허풍을 쏟아내는 떠벌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킥 하나로 말한다. 이들의 발을 떠난 볼은 느릿느릿 골문 중앙을 향한다. 이미 몸을 던진 골키퍼는 이들의 찬 볼을 망연자실 쳐다볼 수 밖에 없다. 우아한 포물선을 그린 볼은 아무런 저항없이 골문 안으로 들어간다. 파넨카킥. 승부차기의 두려움을 극복한 강심장만이 구사할 수 있는 킥이다.
파넨카킥은 1976년 체코의 축구영웅 안토닌 파넨카가 유로 76 결승전에서 첫 선을 보였다. 서독과의 결승전은 2대2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4-3으로 앞선 체코의 마지막 키커 파넨카가 골문 앞에 섰다. 넣으면 우승. 파넨카는 속도를 줄인 칩슛으로 골문을 갈랐다. 이후 이를 파넨카킥이라 불렀다.
이후 축구 스타들은 중요한 순간에 파넨카킥을 애용했다. 프란체스코 토티(이탈리아)는 유로 2000 4강전 승부차기에서 파넨카킥에 성공했다. 지네딘 지단(프랑스)은 2006년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얻은 페널티킥을 파넨카킥으로 처리해 골을 뽑아냈다. K-리그에서는 데얀(서울)이 자신의 K-리그 통산 100번째 골을 파넨카킥으로 달성했다. 장점이 많다. 파넨카킥으로 득점에 성공하면 흐름을 자신들의 편으로 가져올 수 있다. 물론 골키퍼가 예상한다면 너무나 쉽게 막힌다는 단점도 있다. 흐름이 중요한 승부차기에서 파넨카킥은 위험하지만 얻을 것이 많은 필살기인 셈이다.
이번 유로 2012는 파넨카킥의 향연이다. 안드레아 피를로(이탈리아)가 처음 선보였다. 25일 열린 잉글랜드와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피를로(이탈리아)는 파넨카킥을 성공시켰다. 2번 키커 리카르도 몬톨리보의 실축으로 위기를 맞았던 이탈리아는 피를로의 파넨카킥으로 흐름을 끌고 왔다. 기세가 꺾인 잉글랜드는 애슐리 영과 애슐리 콜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무릎을 꿇었다.
두번째 파넨카킥은 28일이었다. 포르투갈을 상대로 4강전에 나선 스페인은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2-2로 팽팽하게 맞선 상황에서 스페인의 키커는 세르히오 라모스. 라모스 역시 파넨카킥으로 골을 성공시켰다. 뒤이어 나온 포르투갈의 브루누 알베스가 골포스트를 맞히면서 4-2로 스페인이 결승에 올랐다. 이탈리아나 스페인 모두 파넨카킥의 원조 파넨카에게 감사해야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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