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겪게 되는 사소한 문화적 차이 중 하나가 바로 후불제이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붐비는 일부 가게를 제외하곤 밥이나 술을 먹을 때 먼저 먹고 나서 계산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불제도에 익숙한 탈북자 에겐 이마저 낯설게 느껴진다.
“북한에서는 물건을 구매하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입구에서 ‘표나 식권’을 먼저 구매한 후 입장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구매한 표를 제시하면 그때야 원하는 것을 받는 거죠.”라고 탈북자 김 모 씨는 전했다.
한국인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이 같은 제도는 물건이 부족하고 다양성이 적은 북한이기 때문에 가능한 그들만의 또 다른 문화인 것이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영상점뿐만 아니라 장마당에서는 그 개념이 더욱 강한데 특히 고난의 행군 이후 선불제 인식이 더욱 확실히 굳혀졌다는 것이다. 만일 손님이 먼저 음식을 먹은 후 계산을 하겠다고 하면 정신병자 취급을 당할 정도라고 한다.
경제난 때문이 아닌 사회 구조상 선불제로 운영되던 북한의 사회구조가 이처럼 경제난이 가속된 이후에는 선불제란 개념 자체가 무전취식을 방지하기 위한 이유로 변질하고 있는 것이다.
후불제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신용카드이다. 이런 제도는 물건을 제공하고 구매하는 사람 간의 자신감과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사회 제도상 시작된 북한의 선불제 개념이 이제는 경제난 이라는 이유까지 겹쳐 북한주민의 자신감 상실과 서로간의 믿음마저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선불을 주던 습관이 남아있는 초창기 탈북자들은 북한의 가족을 한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브로커에게 선불을 주다 많은 사기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최근에는 후불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개념 차이 때문에 간혹 브로커와 마찰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이다.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먼저 요구하는 선불의 개념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악랄한 선불제도 일 것이다.
북한정권은 항상 주민을 핑계 삼아 각국으로부터 구호자금과 물자를 요구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간부들의 호주머니만 채워준다는 것은 탈북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차라리 북한 주민의 상황이 나아진 것을 먼저 확인한 후 나중에 그만큼 지원금을 주는 후불제 지원금제도라도 있었으면 하는 상상마저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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