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그래, 그런거야’ 김해숙이 평범한 엄마이자 주부의 ‘일상과 일생’을 담은 ‘명품 내레이션’으로 안방극장에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김해숙은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극본 김수현 연출 손정현/제작 삼화 네트웍스)에서 유재호(홍요섭)의 아내 한혜경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상황. ‘그래, 대가족’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똑’소리 나는 주부 역할을 관록의 연기력으로 소화,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무엇보다 김해숙은 대가족인 시부모님과 남편, 아이들에게 일생을 바친, 대한민국 ‘보통 주부’로서의 감상과 회한을 내레이션에 담아내 ‘무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때론 신세한탄으로, 때론 인생에 대한 성찰을 연륜이 담긴 ‘혜안’으로 담담하게 읊어내고 있는 것. 시청자들에게 코끝 찡한 눈물과 가슴 벅찬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김해숙의 ‘명품 내레이션’을 정리해본다.
사는 집 무남독녀라니 셋집으로 시작하자는 게 기막힐 수도 있겠지. 무슨 분간이 있구 무슨 심지가 있겠어. 그저 시속따라 유행따라 남따라 나이 먹었겠지. 얘, 내 아들 말 아니라두 너 우리 집 며느리 적임자 아냐. 나두 싫다.(4회, 아들 조한선과 대화하고 내려와 커피 타면서, 조한선이 옛 연인 왕지혜가 결혼 적임자가 아니라고 한 말을 떠올리며)
이 기집애는 전화두 안하네. 얘기 좀 하자고 전화했다가 무 싹둑 잘리듯 잘리고 섭섭한 일이 한두 번도 아닌데, 그때마다 얼마 쯤 부아가 맺히니 나는 참 치사한 엄마다. 딸아이는 모르지만 이 치사한 부아는 제 쪽에서 먼저 말 걸어와 좀 제대로 수다를 떨어주면 바로 없어지니, 나는 참 비굴한 엄마기도 하다. (6회, 아들 조한선이 데려온 여자에 대해 험담하려고 딸 윤소이한테 전화했다가 윤소이가 신경질 내며 끊어버리자)
김삿갓을 모르는 무식한 아들놈은 취직 대신 여행가가 된단다. 항상 조마조마하던 다락방 사다리, 어처구니없어 멍한 채 내려오다 사고를 쳐버렸다. 아픈 건 진통제로 무뎌졌는데... 선풍기 틀어 놓고 앉아 나는... 왜 이렇게 서러울까. (6회, 아들 정해인의 취포자 선언에 놀라 꼬리뼈를 다친 후, 불편한 몸으로 선풍기를 쐬며)
어렸을 때 나도 셋 다 얼마쯤은 천재가 아닌가 한 적이 있었다. 잠깐, 그야말로 잠깐씩이었다. 학년이 보태지면서 착각이 우습게 부서지고 그것으로 얻은 교훈이 그저 중간만 돼라였었다. (중략) 기막혀라. 갈데없는 속물인 나는 가슴팍에 얼음덩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다. 자식한테 목숨 걸고 살았으면 벽에 머리 짓찧고 죽었겠다. 아니지. 아냐. 나는 자식한테 큰 욕심 없어 했던 게 새빨간 거짓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8회, 가족들 식사 준비를 하던 혜경이 첫째 딸 윤소이, 둘째 아들 조한선, 막내아들 정해인을 생각하며, 속물 엄마임을 고백하는 장면)
한 달에 한번 만나는 동창 파이브스타 모임이 칠년 짼데 작년 열두 번에 나는 네 번 빠졌었다. 두 번은 어머님이 심기 불편하셔서, 한 번은 아버님께서 감기, 나머지 한 번은 그이 생일이 맞물려서. 어른들 와병이나 집안행사가 아니더라도 시부모님에, 종일 환자에 치이는 그 사람이랑 큰시아주버님 점심까지... 한꺼번에 나 몰라라 긴 시간 빼기는 쉽지가 않다. (2회, 친구들 모임에 나가고자 버스를 타고 가면서)
선풍기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끝내야할 숙제는 한두 가지가 아닌데 나는 엄동설한에도 선풍기 바람 덕을 보면서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다. (3회, 혼기를 꽉 채워 결혼한 딸 윤소이는 2세 소식이 없고, 홀시아주버니 노주현마저 과부 며느리 서지혜와 정분난 것 아니냐는 헛소문에 시달리자 괴로워하며)
생전에 엄마가 ‘천리 도망은 해도 팔자 도망 못한다’ 그러시더니 돌아가신 큰형님은 몸이 약해서, 작은 형님은 부지런하신 어머님과 성격이 안 맞아서, 결혼하면서부터 부모님은 우리랑 살기를 원하셨고 그렇게 살아왔다. 부모님 모시는 일이 불만인 적은 없었는데 나이 탓인가. 일요일 마다 모여서 먹는 점심이 이제는 정말 버겁다. (3회, 매주 주말마다 벌어지는 식구들 식사모임에 칼국수를 끓여 먹고 난 후 뒷정리를 하며)
차 한 잔 마시고 헤어지자는 말을 누가 꺼냈었는지 모르겠다. 차를 주문하고 차가 나와 놓여지고... 그리고 우리는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고 조용하다...우리 언제 누가 은희 다음 차례일지 몰라. 살아있는 동안 서로 많이 보고 서로 잘하자, 혜경이 너 앞으로 모임 빠지지 마, 커피숍 앞에서 헤어지면서 수경이가 말했다. 그러마고 대답했다. (5회, 췌장암 투병 중인 친구를 만나고 나온 후 친구들과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택시에서 내려 건널목을 분주하게 건너며)
아무 일 없는 듯 할일하면서 웃을 때 웃고 말할 때 말 하면서, 머리 반쪽은 낙엽처럼 말라 누워있던 친구가 차지하고 있다. 늬들 너무 열심히 살지 마... 너무 참지두 마. 농땡이도 부리고 화두 내면서 살아. 은희는 한 마디를 더 했었다. 나는... 참 바보처럼 살았어...(6회, 가족들 함께 모여 대구탕을 끓여 먹은 후 설거지하며)
돌아가신 엄마가 착하다고 좋아하셨던 유서방은 착하기는 개뿔. 보기 싫어 나가랬더니 나가서 아예 날 잊어버렸나 보다. 딸년도 아들 녀석도 두 시간 째 한번 들여다를 안 본다. 엄마 돌아가시고 나니 각각 살기 바쁜 친정 형제도 점점 멀어지고... 엄마 나 막내가 속 썩여요. 엄마 나 다쳐서 아파요. 엄마 나 너무 힘들어요...(7회, 아들 정해인의 취포자 선언과 꼬리뼈 부상으로 불편한 몸과 마음을 가족들 누구도 알아주지 않자, 약을 먹으며 서러움에 복받쳐)
천수를 다하고 떠나든, 어려서, 젊어서,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에 병이나 사고로 끝나든... 마무리는 누구나 죽음이다. 60년 살아오면서 부모님도 가셨고 오빠도 세상 버렸고 큰집 형님도 조카도 떠나갔다. 삶이라는 게... 목숨이라는 게... 그래 그런 거지. 한치 앞 모르는 채 웃고 울고 화내고 싸우다가 어느 날 호출 당하면 다 놓고 끌려가 사라지는 걸로 정리되는 거지. 아직 한참은 더 함께 할 줄 알았던 오랜 친구가 저 세상으로 사라진단다. 친구가 떠난다는데 나는 이 아침에 내 인생을 생각한다. (4회, 친한 친구가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아침에 일어나 남편 홍요섭의 병원 유리창을 청소하며)
석 달 남겨뒀다는 친구가 보자고 한대서 허둥지둥 서둘러 나섰다. 본인도 우리도 다같이, 얼마 안남은 시간을 알고 있으면서... 어떤 얼굴로 친구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답이 안 나온다. 물론 안하겠지만 기껏 생각나는 말이, 괜찮아 누구나 가는 길, 우리도 다 갈 길을 그저 니가 먼저 가는 것뿐이야... 얼마나 싸가지 없는 말인가. 누구의 죽음도 괜찮은 죽음은 없다... 그저 아직은 살아있는 사람의 미안함과 언젠가는 나도 죽는다는 두려움의 겉포장일 뿐이다. (5회, 췌장암으로 석 달 시한부 선고를 받은 친구를 만나러 서둘러 집을 나서며)
제작사 삼화 네트웍스 측은 “김수현 작가의 명품 대사가 관록의 배우 김해숙을 만나 완벽한 조화를 이뤄내면서 내레이션 자체만으로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매회 내레이션을 통해 전해지는 우리 시대 보통 엄마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가까이 느껴보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는 매주 토, 일요일 오후 8시 45분에 방송된다.[사진제공=‘그래, 그런거야’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