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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고치려 적금 깨고 집 팔고
  • 김만석
  • 등록 2017-02-22 09: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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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 의료비' 짓눌린 16만 명

유방암 환자 허모(63)씨는 2010년 암 발병 후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지만 재발했다. 2015년 1월 항암제 치료를 시작했다. 그해 9월까지 허셉틴·도세탁셀·퍼제타라는 세 가지 항암제를 섞어서 11차례 주사했다. 그 이후 캐싸일라라는 신약으로 바꿔 25차례 맞았다.


허셉틴과 도세탁셀은 건강보험이 적용됐지만 퍼제타와 캐싸일라는 신약이어서 건보 대상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한 번 맞을 때마다 각각 450만원, 520만원씩을 부담했다. 퍼제타는 이달에야 건보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허씨는 “세 가지 약제 혼합요법이 잘 안 들었지만 캐싸일라로 바꾸니 거짓말같이 암이 줄었다. 그 덕에 지금은 많이 나았다”고 말했다.


허씨의 진료비 총액은 모두 2억516만원이다. 이 중 건보 적용 진료비는 2456만원밖에 안 된다. 5%인 123만원을 허씨가 내고, 2333만원을 건보가 부담했다. 보험이 안 되는 두 개의 신약값과 각종 비보험 검사비 1억8060만원을 더해 총 1억8183만원을 허씨가 냈다. 허씨는 “그동안 모아 둔 돈을 쓰고도 모자라 집을 팔았다. 이것도 다 써 가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암 환자 진료비 2억 중 1억8000만원 자부담



허씨가 부담한 의료비는 사실상 재난과 마찬가지다. 이런 재난적 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환자가 16만2832명(2014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임승지 부연구위원은 22일 열리는 제1차 건강보장세미나에서 재난적 의료비 실태(추정치)를 공개한다. 실태조사에서는 소득 계층별로 의료비 지출 규모를 차등화했다.


의료급여(기초생활보장 수급자)나 차상위 계층은 1회 입원비 부담이 100만원 이상, 소득(건보료 부과 기준) 1~3분위는 소득의 20%, 4~8분위는 30%, 9~10분위는 40% 이상 지출하는 경우를 재난적 의료비로 구분했다. 소득 3분위 이하 저소득층(15만1368명)이 전체의 93%를 차지한다.



암 환자만 이런 상황인 게 아니다. 30대 여성 뇌전증(간질) 환자는 2010년 발병 이후 약값과 검사비 등으로 1500만원을 부담했다. 그래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뇌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여기에 최소 2000만원이 더 든다. 환자의 어머니는 “언제 발작할지 몰라 딸이 사회생활을 못하고 친구도 만나지 않는다”며 “딸의 병이 나을 수 있다면 집을 파는 게 아깝겠느냐”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홍승봉 교수는 “뇌전증 환자 20만 명 중 5만 명이 약물로 치료가 잘 안 되는 난치성 환자인 데다 중증 환자 1만5000~2만 명 중 1만 명은 수술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1500만~3000만원에 달하는 수술비 때문에 실제로는 500명 정도밖에 수술을 받지 못한다”고 소개했다.


5대 질환 1만6000명만 2000만원까지 지원


현 정부 들어 연평균 1조5000억원을 투입해 건강보험 보장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그런데도 재난 의료비에 노출된 환자가 많은 이유는 비보험 진료비가 계속 커지면서 실제로 총 진료비의 63%만 건보가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2013년부터 암·뇌질환·심장병·희귀난치병·중증 화상 환자 가운데 재난 의료비가 닥친 경우 최고 2000만원까지 복권기금·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 덕분에 말기 신장질환(합병증)을 앓는 김모(60·광주광역시 북구)씨는 자신이 부담해야 할 치료비 2667만원 중에서 1507만원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지원 대상 질환이 다섯 가지에 불과한 데다 중위 소득(4인 가구 약 447만원)의 120% 이하 가정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재난 의료비 대상자의 10%가량인 1만6231명만 혜택을 본다. 그래도 환자 부담이 9%포인트 줄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올해 끝나게 돼 있다.


게다가 항암제 신약이 계속 진화하면서 가격이 올라가고 있지만 건보 적용이 되지 않아 서민층은 사실상 접근하기 어렵다. 현재 보험이 안 되는 항암 신약이 30가지에 달한다.


삼성서울병원 홍 교수는 “4대 중증 질환 위주로 의료비를 지원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뇌전증을 비롯해 가계 부담이 큰 질병이면 모두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진료비 때문에 계층이 하락하거나 집을 파는 재난적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기 어렵다면 재난적 의료비는 별도의 재원을 마련해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난 의료비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료비가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를 제외한 지출의 40%를 넘는 경우로 정의한다. 건보정책연구원은 소득별로 20~40%로 잡았다. 벨기에는 ‘의료 난민’이 생기지 않게 건보재정으로 특별연대기금을, 영국은 항암제기금을 조성해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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