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34)의 LA 다저스 입단은 ‘없던 일’이 됐다. 박찬호가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예선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한 다저스는 “올림픽 출전을 강행하려면 계약을 포기하라”고 통보했고, 박찬호는 고민 끝에 태극 마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박찬호는 내년 시즌 뛸 새 구단을 물색할 처지에 놓였다. 박찬호가 직접 밝힌 대로 그와 다저스의 계약은 확정된 상태가 아니었다. 다저스 측은 물론 에이전트인 제프 보리스 측도 박찬호의 다저스 입단을 공식화한 적이 없다. 다저스의 일거수 일투족을 빼놓지 않고 전하는 LA타임스도 박찬호가 다저스에 입단했다고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박찬호 본인이 다저스와 스플릿계약에 기본적으로 합의한 뒤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을 뿐이다. 최종 사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단이 무산됐으니 ‘계약 파기’가 아닌 ‘협상 결렬’로 귀결된 셈이다.다저스는 왜 박찬호의 대표팀 합류를 극구 반대했을까. 여기에는 지난 98년 겨울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하다. 96년 풀타임 빅리거로 자리 잡은 박찬호는 이후 3년간 합계 34승을 거두며 다저스의 확실한 ‘2선발’로 자리 잡았다. 이 시점에서 박찬호는 중대한 결정을 한다. 98년 시즌을 마친 그는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해 미국 진출 이후 처음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병역 미필 상태였던 까닭에 금메달을 딸 경우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어 무리를 해서라도 전력투구를 해야 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다저스도 그의 대표팀 합류에 흔쾌히 동의했다. 만에 하나 발생할 부상을을 염려해 전담 트레이너를 붙여주기도 했다.박찬호는 방콕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했다. 다저스도 팀 에이스의 병역 면제 사실에 기뻐했다. 그러나 결실의 대가는 컸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후유증이 나타나 99년 시즌을 망치고 말았다. 잘나가던 박찬호는 아시안게임 참가 이후 갑자기 예전의 위력을 잃었다. 99년 시즌 13승을 거뒀지만 방어율이 5.23으로 치솟는 믿기 어려운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피안타수는 208개로 치솟았고, 피홈런도 31개나 기록했다. 두 부문 모두 박찬호의 빅리그 14년 경력 가운데 최악이었다. 이에 다저스는 이번 겨울 LA 복귀를 희망한 박찬호에게 대표팀 합류를 만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협상 마무리를 압두고 박찬호의 올림픽 예선 참가 소식을 접한 뒤 ‘최후통첩’을 통보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태극마크를 달고 선후배들과 땀을 흘리던 박찬호는 중간에서 그만둘 수 없었다. 박찬호는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라며 “새로운 목표와 꿈을 향해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개인적인 일로 국가적인 목적을 위해 뜻을 같이 한 동료들과 등을 돌릴 수 없었다”고 입단 무산의 변을 밝혔다.메이저리그 오프시즌은 스프링캠프 개막 직전까지 이어진다. 올림픽 예선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뒤 다른 구단을 물색해도 늦지 않다. 메이저리그에는 30개 구단이 존재한다. 박찬호 정도의 경력이라면 다저스에서 제시한 기본 조건(스프링캠프 초청에 스플릿계약)은 무난히 얻어낼 수 있다. 꿈을 위해 현실을 포기한 박찬호가 그의 표현대로 “무사히 대업을 마치고 건강하게 꿈에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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