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음 작품이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드는 과작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엄청난집필 속도로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도 있다. 스콧 스미스나 하라 료가 전자의 대표적인 예라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내가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는 속도보다 그의 신작 나오는 속도가 더 빠른 것 같다”며 귀여운 푸념을 토로한 바 있듯, 스티븐 킹은 후자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킹과 같은 다작 작가이다. 1985년 데뷔 이래 2022년 현재까지 100여 편의 장편소설과 단편집, 그리고 짬짬이 에세이와 그림책 등을 발표했으니 어림잡아 해마다 평균 3편 이상의 작품을 탈고한 셈이다.
그렇다면 《몽환화》는 그의 이력에 상당히 예외적인 방점을 찍는다. 월간 <역사가도>에 연재가 끝나고 수차례 개고를 거쳐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까지 장장 10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시간인 만큼, 이야기는 결국 ‘노란 나팔꽃’이라는 제재만 남겨두고 환골탈태하여 전혀 새로운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 타고난 스토리셀러로서 집필 시간과 작품의 질은 정비례하지 않음을 줄기차게 증명해온 히가시노 게이고지만, 세월을 들여 정성껏 벼린 《몽환화》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웰메이드 소설의 강렬한 오라를 풍기며 독자의 심장을 노크한다.
한편, 에도시대에는 존재했으나 지금은 볼 수 없는 노란 나팔꽃을 추적하는 고품격 미스터리극 《몽환화》는 “수면 아래 한없는 저력을 감춘 빙산과 같은 작가”라는 상찬과 함께 슈에이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제26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수상했고, 100만 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출판사에 따르면, 《몽환화》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쫓는 리노의 이야기를 씨실로 삼고, 가족의 비밀을 파헤치는 소타의 이야기를 날실로 삼아 마치 기하학적 미학을 자랑하는 아라베스크의 양탄자처럼 거대하면서도 정교한 하나의 그림을 직조해낸다. (리노를 중심으로) 할아버지 죽음의 뒤를 추적하는 집요한 추적극이면서, (형사 하야세를 중심으로) 붕괴된 가족의 뭉클한 화해의 드라마이고 동시에 (소타를 중심으로) 사회적 의무를 기꺼이 짊어지고 나서는 개인적, 사회적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김영사의 신간, 히가시노 게이고의 《몽환화》는 2월 28일 출간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