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점의 작가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일본의 여류 작가 미우라 아야코가 조그만 점포를 열었을 때 이야기다. 점포를 열기 무섭게 장사가 너무 잘 돼 트럭으로 물건을 공급할 정도로 매출이 쑥쑥 올랐다. 그에 반해 옆집 가게는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그때 그녀는 남편에게 솔직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우리 가게가 잘되고 보니 이웃 가게들이 문을 닫을 지경이에요. 하지만 이건 우리가 바라는 바가 아님은 물론 하느님의 뜻에도 어긋나는 것 같아요. ”
남편은 그렇게 상대방을 배려하는 아내가 자랑스러워 가게 규모를 축소하고 손님이 오면 이웃 가게로 보내주곤 했다. 그 결과 시간이 남게 되었고 평소 관심 있던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그 글이 바로 ‘빙점’이라는 유명한 소설이다. 그녀는 이 소설을 신문에 응모해 당선되었고 가게에서 번 돈보다 몇 백배의 부와 명예를 얻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녀의 '배려' 덕분이었던 것이다.
사실 배려는 사소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상대방의 입장을 헤아리다 보면 배려의 싹이 탄생하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은 배려를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배려는 결코 그런 게 아니다. 차를 바르게 주차하는 것이나, 대중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지 않는 것도 다 배려인 셈이다. 특히 어떤 집단 속에서의 배려는 이 보다 더 중요하다 하겠다. 앤 리처즈는 처음으로 미국 텍사스 주 공직에 오른 여성이다. 물론 그에 걸맞은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언제나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항상 자신이 무능력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텍사스 주의 재무 담당으로 일하던 시절엔 그런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술을 시작했는데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안 좋은 감정과 무력감이 모두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술을 더 많이 마셔야만 그런 상태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에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낄 무렵에는 너무도 심각한 사태가 되어서 의사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앤은 스스로를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자신을 집으로 초대했고 도착한 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집에는 앤의 알코올 중독을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앤에 대한 기대와 그간의 술로 인한 실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그 모임 직후 앤은 치료를 받기 위해 곧장 비행기를 타고 요양원에 들어갔다. 자신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앤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들었고 재기 후에 앤은 사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텍사스의 주지사로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비난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지만 배려는 그렇지 않다. 비난은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지만 배려는 사람을 소생시키는 힘이 있다. 우리는 배려를 선택함으로 사람들에게 좌절감 대신 용기를, 두려움 대신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가 될 수 있다. 배려(配慮)라는 한자 역시 아주 의미심장하다. 배(配)자는 주로 배필을 의미할 때 쓰는 말로 자기(己) 몸을 상대방에게 준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려(慮)자는 아주 깊이 생각한다는 뜻을 가진 한자다. 즉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나의 생각과 나의 몸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적극적인 희생정신이 깃들어 있는 단어인 셈이다. 물론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다.
운전 할 때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것이나, 주황색 신호등 앞에서 경적을 울리지 않는 것도 일종의 배려로 볼 수 있겠다.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나의 작은 배려가 공동체를 살리고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던 윤일병 구타사망 사건도 어쩌면 배려심 부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같은 처지에 놓인 환경에서 서로 조금만 더 감싸줬더라면 이런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