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심판, 더민주 어부지리, 국민의당 선전’으로 끝난 20대 총선은 주요 정당 대권주자들에게도 희비가 엇갈렸다. 새누리당 소속 인물들 대부분은 총선 패배의 유탄을 맞았으며, 더민주 소속 인물들은 기사회생의 기회와 함께 작지 않은 숙제가 남겨졌고, 국민의당 대권주자는 엄청난 기회와 함께 ‘보이지 않는 위험’의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고 20일쯤 지난 시점의 여론조사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다. 총선 선전으로 인해 총선 직후 각종 조사에서 지지율이 상승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지율은 소폭 하락했고, 총선 후 잠행 모드 중이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대표와 총선 낙선 후 관심에서 사라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지지율은 소폭 상승한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당대표이든 지방단체장이든 이른바 ‘현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권주자는 하락을 했고, 칩거 중이거나 언론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사람의 경우는 지지율이 상승했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국민들 눈앞에 보이지 않아야 인기가 올라가고 현직에서 뭐 좀 해보려고 하면은 오히려 인기가 내려가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당 대표시절에 특별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며 리더십도 없었다. 위기 때마다 ‘혁신위’와 ‘비대위’라는 대리인을 내세워서 겨우 피해가는 모습만 보여줬으며, 자신의 발언(전당대회 때 ‘승리하는 정당’, 호남지지 없으면 ‘은퇴’ 등)에 대한 결과도 은근슬쩍 모르는척 넘어가기만 했었다. 국가 철학, 통치 철학, 정치 철학 등 모든 것이 부족했었다.
오로지 친노 정권만을 위한 마중물 역할에만 몰두하며 제1야당을 계속된 위기 속으로 빠져들게 했고 말로만 탈계파를 외쳤었다. 그런데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양산 칩거에 들어가자 오히려 지지율이 올랐다. 정작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인기가 올라간 것이다. 필자가 이미 1년 전부터 문재인 전 대표는 한 발 후퇴해야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증명된 셈이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무리한 정치적 승부로 인해 보수여당에 큰 위기를 초래했으며 이후 관심에서 사라졌다가 총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으나 ‘청년들 개발도상국에서 살아봐라’ 등의 발언을 하며 이전에 보여주었던 신선함과 인물능력을 강화하지는 못하고, 여당 전통적 지지층의 눈에 들기 위한 노력에만 매달렸었다.
이른바 ‘꼰대’가 돼서 돌아온 것이다. 무엇보다도 서울시장 사퇴에 대한 반성보다는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에 집중하는 등 지도자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역시 국민들의 선택은 무서웠다. 그런데 총선에서 낙선한 그가 언론과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지자 그도 역시 지지율이 올라갔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이 돼버린 꼴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의 경우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 총선을 통해서 다른 어느 대권주자보다도 훨씬 유리한 상황을 맞이했으나 국민의당 여기저기에서 총선 선전에 도취된 모습을 보여주며 정제되지 않은 메시지들이 돌출됐다. 게다가 새로 선임된 원대대표는 마치 당 대표 대행까지 된 듯 한 모습을 보여주며 국민의당의 주요 이슈를 주도했다.
그러자 다른 대권주자들보다 유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은 거꾸로 내려가 버린 것이다. 문재인, 오세훈의 경우처럼 언론에서 사라지고 존재감이 없어져야 지지율이 오르니 안철수 대표 본인도 조용히 있고 싶은 마음에 박지원 원내대표를 내세운 것일까? 평소와 다르게 본인이 아니라 남을 내세운 이유가 궁금하다.
안철수 대표는 현재 국민의당 내부에서 측근들 간의 힘겨루기와 측근 위주의 인사로 인해서 스스로 함축적인 세력이 돼버리는 오류를 보일 위험에 처해있다. 제3당의 성공도 얼떨결에 얻었다. 그러다보니 준비되지 못한 제3당의 역할과 콘텐츠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보인다. 아직까지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 중인 벤처 정치인의 모습이 역력하다.
이렇듯 한국에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들과 언론의 눈앞에서 사라져야 지지율이 오르는 희한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도 대권 주자급 정치인들이 세련되지 못한 정치력과 지도력을 여과 없이 보여줬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 지도자로서 분명한 철학과 리더십, 전략적 사고 등을 갖추기보다는 오로지 권력을 향한 의지로만 정치에 임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측근이나 계파(계보) 위주의 인사와 의사구조는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를 실제 민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게끔 해준다. 이러한 결과가 정기 여론조사를 통해 바로 표출된 것이다. 특히나 야권에 유력 대권주자들은 기껏해야 이제 재선 국회의원에 돌입하는 단계이다. 즉, 과거 3김 정치인들처럼 정치와 권력의 생리에 대해서 단련이 돼 있지 못함도 이유일 수 있다.
정치 지도자가 정치 현안에서 빠져있거나 잠행을 한다는 것은 책임 정치가 아니다.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리더십도 없으며 측근과의 소통만이 가능한 밀실 정치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미지 정치일 뿐이다. 국민을 이해하고 많은 사람과 소통하며, 자신의 정치 철학과 국가 철학을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정치 지도자의 자세일 것이다.
그런데 막상 현실에서 정치를 하려니 이러한 부분에서의 단련도 부족하고 정치 철학적 사고도 부족하다보니 예기치 못한 실기를 하게 되면서 지지율이 내려가게 되고 오히려 관심 밖에서 숨어있어야 지지율이 오르는 희한한 현상이 발생되는 것이다. 요즘 표현대로 하자면 정말로 ‘웃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