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전 강원 강릉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관 2명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매몰돼 숨졌다. 오래된 한옥 건축물이라 보존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고 마지막까지 건물 내부에 남아서 불을 끄다가 그만 변을 당했다.
강원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29분 강릉시 강문동 경포호 수변에 위치한 ‘석란정’에서 발생한 불을 끄던 경포119안전센터 소속 이영욱(59) 소방위와 이호현(27) 소방사가 정자가 붕괴하면서 기와와 진흙 등에 깔렸다. 두 소방관은 매몰된 지 18분 만에 구조됐으나 심정지 상태였다. 두 소방관은 구조 후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 소방사는 오전 5시33분, 이 소방위는 오전 6시53분쯤 각각 숨졌다.
석란정의 최초 화재는 전날 오후 9시45분쯤 발생해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12분 만에 진화했다. 그런데 이날 오전 3시51분 재발화해 소방대원들이 7분 만에 껐다. 당시 현장에는 경포119안전센터 직원 5명이 출동했다. 이 소방위와 이 소방사는 정자 바닥에서 나오는 연기를 끄려고 마지막까지 남아서 잔불을 정리한 뒤 나오던 중 무너진 건물 지붕에 깔렸다. 소방 관계자는 “진흙과 나무로 지어진 목조건물이 이틀 동안 화재 진압과정에서 물을 많이 머금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2015년 12월 석란정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 대형 호텔 신축공사가 시작되면서 정자 외벽에 금이 가고 30㎝가량 틈이 벌어져 파이프로 보강조치를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주민들은 정자 이전도 요구했다. 석란정 주변에는 펜스를 치고, 지붕에 천막을 설치했다. 불이 난 석란정은 1956년 지어진 목조 기와 정자로 높이 10m, 면적은 40㎡다. 비지정 문화재로 강릉시에서 관리하고 내부에 전기시설은 없다.
숨진 이 소방위는 정년을 1년여 앞둔 베테랑 대원으로 91세 노모를 모시며 아내(56), 아들(36)과 함께 생활했다. 지난 7월부터 경포119안전센터 화재진압 팀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는 1988년 서울 성동소방서에서 소방관 생활을 시작했지만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자 1994년 강릉소방서에 전입할 정도로 효자였다. 그는 책임감과 뛰어난 리더십은 물론 현장에서 항상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선후배들에게 신망이 두터웠고 표창장도 여섯 차례나 받았다.
미혼인 이 소방사는 지난 1월9일 경포 119안전센터에 첫 발령을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품어온 소방관의 꿈을 이루고자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강원도립대학 소방환경방재학과로 편입했다. 서울 노량진에서 소방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그는 지난해 강원도립대 소방환경방재학과 장학생 분야 경력채용에 합격하면서 꿈을 이뤘다.
이 소방사는 지난 13일 소방공무원을 꿈꾸는 모교 후배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모교인 강원도립대를 찾았다. 그는 후배들에게 소방관으로 일하면서 겪은 어려움과 보람을 말하며 “강릉 출신으로서 강릉 전체를 책임지는 소방대원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방사를 가르친 황재호 강원도립대 교수는 “수업 중 대형 영화관의 화재 피난시뮬레이션 과제를 맡았던 이 소방사는 영화관 건물을 수차례 오르내리며 어떻게 시민들을 대피시킬지 연구했다”며 “훌륭한 소방관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고 느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해 안타깝다”고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최상규 경포 119안전센터장은 “솔선수범하는 베테랑 대원과 소방관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젊은 소방관을 한꺼번에 잃어 비통하다”고 말했다.
두 소방관의 빈소는 강릉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19일 오전 10시 강릉시청 대강당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열린다. 영결식에는 가족과 동료 소방관, 김부겸 행전안전부 장관 등이 참석해 두 소방관의 마지막을 배웅한다. 고인은 영결식 후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관 묘역에 안장된다. 도 소방본부는 순직한 두 대원에게 1계급 특진과 옥조근정훈장 추서를 추진하기로 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18일 현장에서 화재감식을 하고 방화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