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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연휴 '걷고 싶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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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09-05-04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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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 갑곶 ~초지진 호국의 현장

 
흔히 강화도를 ‘역사의 땅, 눈물의 섬’이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 강화도만큼 외적의 침략이 잦았던 곳도 흔치 않기 때문이다. 서해안 중간쯤에 자리한 강화도는 고려와 조선의 도읍지이던 개경과 한양의 길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또한 외침으로 나라가 존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항쟁의 거점이 되곤 했다. 이는 도읍지와 가까운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뿐 아니라 한 해 농사로 몇 해 동안 먹고 살 정도로 풍요롭다는 점이 고려된 결과였다. 하지만 침략자들에 의해 천혜의 방어선인 염하(鹽河·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좁은 물길)가 뚫리거나 강화성이 함락될 때마다 살육과 약탈의 광풍이 온 섬을 휩쓸었다.
 
조선 후기 들어와 강화도는 섬 전체가 군사요새로 탈바꿈했다. 모두 12진·보와 53돈대, 9포대가 해안 곳곳에 설치됐던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던 갑곶돈대, 광성보, 용두돈대, 덕진진, 초지진 등은 모두 강화 동쪽의 염하 해안에 자리한다. 맨 북쪽의 갑곶에서 남쪽 초지진 사이의 약 13킬로미터 구간에는 왕복 2차로의 해안도로가 개설돼 있다. 자동차로 달리면 드라이브의 묘미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짧은 길이다. 하지만 역사유적 답사를 겸한 걷기여행을 즐기기에는 최적의 코스로 꼽을 만하다. 예닐곱 시간이 소요될 정도의 전체 길이도 적당하고, 오르막이나 내리막 같은 비탈길이 거의 없는 데다 시종 바다를 끼고 있어 가뿐히 걸을 수 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운요호사건의 현장인 초지진.
 
신미양요 순국용사비 앞에 절로 고개가…
 
염하 해안도로를 따라가는 걷기여행은 강화역사관(032-930-7077)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근세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강화도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다. 바로 옆의 바닷가에는 갑곶돈대(사적 제306호)가 있다.
 
갑곶이 우리 역사의 주요 무대에 등장한 때는 고려시대 몽고 침략기였다. 처음에 몽고 침략군과 화친을 맺은 고려 무신정권은 몽고가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자 전면전을 각오하고 강화도로 도읍지를 옮겼다. 이후 삼별초군을 앞세운 고려는 강화도를 근거지로 삼아 39년 동안이나 대몽항쟁을 계속했다. 강화성의 튼실한 방비와 염화수도라는 천혜의 방어선 덕택이었다. 수전(水戰)의 경험이 거의 없던 몽고군은 갑곶 건너편 문수산성에서 물끄러미 이 섬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 병자호란(1636) 당시에도 강화도는 항쟁의 근거지로 활용됐다. 하지만 강화도 수비대장을 맡은 김경징이라는 자가 갑곶을 비롯한 강화도 해안의 방비를 소홀히 한 탓에 곧바로 청군에게 함락되고 말았다.
 
원형경기장 처럼 둥그런 모양의 오두돈대.
 

갑곶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앞다퉈 우리 땅을 넘보던 조선 말기에 역사의 전면에 다시 등장했다. 병인년(1866) 9월 6일, 프랑스 함대의 로즈 제독은 전함 7척을 이끌고 갑곶진에 상륙했다. 이틀 만에 강화부를 점령한 프랑스군은 학살과 방화, 노략질을 일삼았고 외규장각 도서들도 빼앗아갔다.
 
갑곶돈대 남쪽 바닷가에는 나지막한 토성이 이어진다. 바로 강화외성(사적 제452호)이다. 현재 보행자 전용도로로 활용되는 이 외성은 고려의 대몽항쟁 때인 1233년 적북돈대에서 초지진까지 약 23킬로미터에 걸쳐 축조됐다. 조선시대에도 강화 해안의 방어를 위해 강화외성은 계속 보수하거나 개축했는데, 오두돈대 부근에는 영조 18년(1742)에 벽돌로 쌓은 전축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갑곶에서 초지진 사이의 염하 해안에는 근래 새로 축조된 제방도 많다. 제방 길은 대체로 들꽃이 철따라 피고 지는 맨땅이거나 잔디와 억새 따위로 뒤덮인 풀숲 길이다. 제방 아래 갯벌에는 넓은 갈대밭도 형성돼 있다. 13킬로미터의 전체 구간 중 적어도 10킬로미터 이상은 복잡하고 딱딱한 포장도로 대신 한가롭고 부드러운 흙길을 이용할 수 있다. 더욱이 광성보와 덕진진에서는 조붓한 산길도 지나게 된다. 길이 편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걷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근래 복원된 용진진과 돈대.
 
강화도 동쪽 해안의 국방유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광성보(사적 제227호)다. 평양 대동강에서 발생한 ‘셔먼호 사건’에 대한 배상금 지급과 관련자 처벌을 조선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하던 미국은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종 8년(1871) 군함 5척과 해병대 1천2백명을 이끌고 마침내 조선 침략을 감행했다. 이른바 신미양요를 일으킨 것이다.
 
미국 군함이 강화도로 접근하자 갑곶진,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등지를 지키던 조선군은 맹렬히 포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정조준조차 되지 않고 포탄이 터지지도 않는 홍이포와 소포로는 미군의 상륙을 저지할 수 없었다. 결국 광성보를 지키던 어재연 장군과 그 휘하 조선군은 대부분 전사했다. 또한 중상을 입고 생포된 20여 명을 빼고는 단 한 사람의 투항자도 없었다고 한다. 당시 광성보 전투에 대해 한 미군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조선 군대의 용기는 놀랄 만하다. 죽기를 각오하고 맨손으로 대항하는가 하면, 생포되지 않으려 물에 떨어져 죽거나 자결하고 부상자는 우리에게 흙을 뿌렸다. 우리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장렬하게 전사한 조선 군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강화 제일 남장포대 들러 초지진까지
 
신미양요 당시 최대 격전지였던 광성보에는 3개의 돈대가 있다. 다리미 모양의 아담한 광성보돈대, 염하 쪽으로 용의 머리처럼 길게 뻗어나간 용두돈대, 광성보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한 손돌목돈대다. 그중 용두돈대는 강화도의 돈대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광성보돈대에서 용두돈대로 가는 길가에는 신미양요 당시 순국한 어재연, 재수 형제를 기리는 쌍충비와 무명용사들의 넋을 위로하는 순국무명용사비가 세워져 있다. 그 아래의 양지바른 기슭에는 무명용사 51명을 7기의 분묘에 합장한 신미순의총이 있어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광성보에서 덕진진으로 가는 길에서는 줄곧 바닷가의 제방을 이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갯벌 위로 걷기 좋은 석축까지 놓여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다. 신미양요 때 미군과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덕진진(사적 제226호)에는 강화 제일의 포대였다는 남장포대가 남아 있다. 그리고 덕진돈대 아래의 바닷가 언덕에는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바닷길을 막았으니 타국 배들은 통과할 수 없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경고비가 세워져 있다.
 
 
강화 제일의 포대였던 덕진진 남장포대.
 
덕진진에서 초지진까지의 거리는 2.8킬로미터로 한달음에 닿을 만큼 가깝다. 초지진은 신미양요와 병인양요뿐 아니라 일본 군함 운요호 사건의 역사적 현장이다. 1875년 여름, 일본 군함 운요호는 ‘조선의 동해, 서해, 남해안에서부터 청나라 우장까지 항해 연구를 한다’는 명분으로 우리나라 서해안을 돌아 초지진 앞바다에 정박했다. 운요호 함장은 20여 명의 해병대를 보트에 태워 초지진으로 상륙하게 했다. 음료수를 구한다는 구실이었다. 하지만 보트가 초지진의 영문과 포대 앞을 지나려 할 때 조선군이 포격을 가했다. 당시 조선은 두 번의 양요를 겪은 터라 사전통고 없이 강화해협에 접근하는 외국 선박을 가만둘 리 없었다.
 
초지진의 포격으로 보트는 물러갔으나 운요호에서 응사해 진과 포대를 완전히 파괴했다. 이때 초지진의 재래식 대포는 사정거리가 짧아 한 발도 적함에 명중되지 못했다고 한다. 초지진을 파괴한 운요호의 함장은 해병대를 상륙시키려 했으나 수심이 얕아 보트를 해안에 댈 수 없었다. 대신 인근 황산도에 불을 질러 민가를 태우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인천 앞바다에 도착한 운요호는 영종진에 함포 사격을 퍼부은 뒤 해병 22명을 상륙시켜 영종진을 점령했다.          
 
일본은 이 사건을 구실로 전권대신을 파견해 협상을 강요했는데, 전권대신은 전함 2척과 수송선 3척에다 4백여 명의 해병을 거느리고 강화도의 갑곶진에 상륙했다. 조선 조정에서는 하는 수 없이 신헌을 파견해 협상에 응했고, 이른바 ‘강화도조약’(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됐다.
 
이렇듯 강화도, 특히 동쪽의 염하 해안은 수많은 선열들의 피와 눈물이 흩뿌려진 역사유적이다. 그래서 여느 관광지나 유원지처럼 마냥 들뜬 기분으로 돌아보기 어렵다. 그것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선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예의이기 때문이다.
 
■ 여행 정보  
 
숙박 갑곶에서 광성보와 덕진진을 거쳐 초지진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주변에는 바다산책모텔(광성보 입구, 032-937-3040), 파레스모텔(갑곶 입구, 032-934-5220), 블루모텔(초지리, 032-937-5303), 초지타운모텔(초지리, 032-937-3011), 웨스트우드펜션(초지삼거리, 010-9065-3594), 초지너머펜션(덕진진 부근, 010-5545-6397) 등의 숙박업소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 맛집

 갑곶에서 초지진 사이의 해안도로변에는 오두돈대장어(032-937-8592), 별미정(032-932-1371), 수연장어(032-933-8292) 등 장어구이 전문점이 늘어서 있다. 갑곶 아래 선원면 신정리 더러미마을은 아예 마을 전체가 장어구이마을을 이룬다. 초지진 인근의 대선정(032-937-1907)은 시래기밥, 메밀칼싹둑이 등 별미를 내놓는 맛집이다. 초지대교 아래 황산도어판장에는 강화도의 별미인 밴댕이회와 각종 생선회를 비교적 저렴하게 내놓는 횟집이 밀집해 있다.  
 
가는 길 
 
승용차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IC(48번 국도)→강화대교→강화대교 교차로→갑곶돈대 주차장
군내버스 갑곶↔더러미 장어마을↔광성보↔덕진진↔초지진↔황산도↔온수리 등을 경유하는 해안순환버스가 강화버스터미널에서 매일 06:20~20:50 사이 11회 운행한다. 문의 선진버스(032-934-9105)
 
<글·사진:위클리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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