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호텔 화재 유가족, 경기도·국가 상대로 손배소…“소방 대응 부실, 국가 책임 있다”
지난해 8월 7명이 숨진 부천 호텔 화재 참사의 유가족들이 경기도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소송에는 숨진 5명의 유족 16명이 참여했으며, 피고는 호텔 관계자 4명, 경기도, 국가다.유족 측은 소방의 대응 미흡으로 인명 피해가 커졌다며, 경기도가 소방의 지휘·감독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특히 고가사다리차를 ...
중구, 2025년 구민감사관 역량 강화 공동연수(워크숍) 개최
(뉴스21일간/노유림기자)=울산 중구(구청장 김영길)가 10월 24일 경상북도 영주시 일대에서 ‘2025년 구민감사관 역량 강화 공동연수(워크숍)’를 진행했다. 구민감사관의 청렴 의식과 감사 역량을 높이고 행정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공동연수(워크숍)에는 구민감사관과 관계 공무원 등 16명이 참석했다. 이번 공동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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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성범)는 나주 복암리 고분군(사적 제404호) 주변지역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31점의 백제시대 목간을 공개했다.
백제의 중앙(現 충남 扶餘)이 아닌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발견된 이 목간들은 종류가 다양하고 기록된 내용과 수량이 풍부하여 백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이번에 공개하는 목간들은 2008년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것으로 상태가 양호하여 이미 공개된 바 있는 3점을 포함해 모두 31점이며, 올해 5월까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를 완료한 것이다.
31점의 목간은 직경5.6m, 깊이4.8m의 백제 사비시기(A.D. 538~660년)에 해당하는 대형원형수혈유구에서 일괄 출토되었다. 그 중 13점은 묵서가 잘 남아있고 판독이 가능하며 그 종류는 문서목간, 꼬리표(付札)목간, 봉함목간(封檢), 다면목간(?,고), 습자(習字)목간 등으로 지금까지 국내 유적 중 가장 다양한 종류가 확인되었다.
특히 목간들 중 길이60.8㎝, 너비5.2㎝, 두께1㎝의 크기로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목간 중 가장 길고, 가장 큰 목간이 있어 주목된다.
이 목간에는 총 57자의 묵서가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며, 수미지(受米之…), 공지(貢之) 등이 쓰여 있다. 이는 지방 관청에서 공납과 그 과정을 기록한 행정문서 목간으로 판단된다.
한편, 국내에서 최초로 출토된 봉함목간(封緘木簡, 중국식 표현으로 封檢)은 주로 관청에서 문서나 물건을 운송하는데 사용되는 목간의 한 형태로 봉투의 기능 또는 기밀을 요하는 문서 꾸러미나 물건을 운송할 때 쓰이는 것이다.
또한 백제의 촌락문서격인 목간에는 ‘대사촌(大祀村)’의 인명,가축의 실태와 ‘수전(水田)’,‘백전(白田)’,‘맥전(麥田)’ 등 토지의 경작형태와 ‘형(形)’이라는 토지 단위 및 ‘72석(石)’ 등의 소출량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백제 경제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이외에도 양면 묵서가 되어 있는 또 다른 목간의 한쪽 면에는 ‘병지(幷之)’라고 묵서되어 있는데, ‘之’는 ‘~하다’라는 백제의 이두식 표현으로 이두가 이미 백제시대부터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목간 외에도 칼(刀) 모양의 독특한 형태를 띤 나무판에 태극문이 그려진 목제품 한 쌍이 함께 출토가 되었다.
이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태극문양으로 알려져 있던 경주 감은사지 장대석의 태극문(682년)보다 앞서는 것으로, ‘易’,‘五行’ 등 백제의 도교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백제의 사상사 연구에 일조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 목간과 목제유물들과 함께 출토된 유물(대형호, 발형토기, 백제 기와 등)과 다른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과 비교하면 7세기 초로 편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영산강 고대문화권역의 중심지인 나주에서의 목간 출토는 백제 도성이 아닌 지방지역에서 처음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문헌사료가 부족한 백제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특히, 백제의 중앙과 지방 세력과의 관계, 지방 행정 운영, 촌락의 농업 생산, 백제의 사상사,산업사 등에 대한 정보들을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목간의 내용 중 인력을 관리하는 내용과 토지 단위(形)당 소출량, 지명(前港, 大祀村), 관직명(奈率, ?率, 德率 등)이 포함되어 있어 이 지역 고대사회 구조의 일면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나주 복암리 유적 일대가 영산강 유역의 7세기대 백제 지방 통치의 중심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자료이다.
앞으로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 확보된 자료에 대해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여 이 유적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규명해 나갈 예정이며, 복암리 일대에 대한 연차적인 조사를 더욱 확대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