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는 옛 군사깃발을 복원 제작하여 문수산성 남문과 북문 및 홍예문 부근 산성 구간에 문기(門旗), 인기(認旗), 순시기(巡視旗), 영기(令旗) 등 30기 설치했다.
문기(門旗)는 군영의 문에 설치하는 기로 남문에는 붉은색 바탕에, 북문에는 흑색바탕에 비호(날개 달린 호랑이)의 문양이 있다. 인기(認旗)는 소속을 표시하는 기로 문양은 없고 오방색에 의한 바탕색만으로 표시되어 남문에는 붉은색, 북문에는 흑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순시기(巡視旗)는 군중에서 죄를 지은 자를 적발하고 처벌하는 임무를 맡은 순군이 소지한 깃발로 푸른색 바탕에 붉은 글씨로 순시라고 표시되어 있고, 영기(令旗)는 명령을 군중에 전달하는 데 쓰는 것으로 푸른색 바탕에 붉은 글씨로 영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사적 제139호인 문수산성은 고종 3년(1866년) 프랑스군 로스제독이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침입하였을 때 봉상시 봉사 한성근이 이끄는 우리 수비군이 프랑스군을 기습 공격하는 등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시 관계자는 “민족 역사의 산 교육장인 문수산성에 깃발 복원 설치는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자주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줌은 물론, 유비무환 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치 취지를 전했다.
▶문수산성은 강화도의 갑곶진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의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포용하여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의 산성이다.
성이 있는 산은 서쪽으로 강화를 건너는 길목을 장악할 수 있는 요충지로써, 고려말 몽고군은 이 산에 올라 강화를 바라보고 건너려고 시도하였다고 한다.
이 산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입구를 지키기 위하여 조선 19대 숙종 20년(1694년)에 쌓은 것으로 당시 둘레가 2.4km이고 여장(女墻)이 2,173개가 있었으며 성문이 3개 있었다.
이후 순조 12년(1812년)에 대대적으로 고쳐 쌓았는데 성벽은 장방형 혹은 정방형으로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으며 그 위에 여장을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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