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판유통통합전산망강인숙의 자전적 에세이 『성안집 사람들』은 한 여성 지식인이 평생 써온 기록들을 갈무리해 엮은 에세이 전집의 첫 권이자, 그 뿌리를 보여주는 출발점이다. 작가는 구순을 넘긴 지금까지도 글을 통해 자신의 삶과 시대를 성찰해왔다. 『성안집 사람들』은 2004년부터 2024년까지 발표된 여러 에세이집 가운데 『아버지와의 만남』, 『어느 고양이의 꿈』, 『셋째 딸 이야기』 세 권을 합하고 추려 새롭게 재구성하고 보완한 결정판이다. 고향과 가족이라는 근원을 다룬 이 책에서 작가는 “내 고향과 내 조국은 어려서 살았던 퇴락한 성안집 울타리 안이며, 거기서 함께 살았던 혈족들이다”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관이 형성된 뿌리를 되짚는다.
책의 중심에는 북녘 변방에 있던 ‘성안집’이 있다. 옛 역참터에 남아 있던 마지막 집, 폐허 속에서도 매화와 은행나무가 서 있던 곳은 작가의 유년을 품은 장소이자, 곧바로 홍수와 피난, 전쟁과 상실의 기억으로 덮인 공간이었다. 성안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한 집안의 역사이자 곧 한 시대의 축소판이다. 귀양살이한 조상에서 시작해, 식민지 시기 개화기에 엇갈린 조부 형제, 독립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아버지, 전쟁으로 학업과 청춘을 잃은 오빠, 강제 결혼과 전쟁 미망인의 길을 걸은 언니, 정신대로 끌려간 여동생까지, 각 인물의 삶은 시대의 굴곡과 겹쳐져 있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강인함, 집안을 떠받친 딸들의 존재, 유배민의 후손으로 이어받은 강직한 기질과 현실적 곤궁, 교육에 대한 열망과 좌절이 모두 이 책 속에 촘촘히 담겨 있다.
『성안집 사람들』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작가가 자신의 기억과 가족의 역사를 정리하는 이 작업은 단순한 집안의 연대기가 아니다. 역사와 사회를 개인의 경험 속에서 되살려내는 과정이자, 집단의 역사를 증언하는 행위다. 오늘날 자전적 에세이나 가족사를 다룬 작품이 드문 가운데, 강인숙의 서사는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문학적 통로가 된다. 한 집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기 가족사의 흔적과 맞닿게 되고, 역사가 결국 개인들의 총합임을 실감하게 된다. 『성안집 사람들』은 유년의 기억을 불러오는 서정성과 시대를 꿰뚫는 사유가 결합된 독특한 성취로, 상실과 비극을 넘어 삶을 지탱해온 인간성, 여성들의 저력, 교육에 대한 열망,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성안집은 사라졌지만, 그 울타리 안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되살아나,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가족의 서사’를 회복하는 길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