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군은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특별한 용무가 있어 출입을 하려면 해당 군부대에 허가신청 후 1주일 이상 기다려야 했던 연미정(유형문화재 제24호) 출입을 이제 신분증 제시만으로도 쉽게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연미정은 북한 땅이 마주 바라보이는 월곶리 끝자락 뾰족 튀어나온 곶(串)의 봉우리에 고풍스럽게 지어 경관을 보며 풍류를 즐기거나 학문을 공부하던 옛 정자로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하나는 서해, 또 하나는 강화해협으로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燕尾亭)이라 지었다. 언제 처음 지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고려 고종(재위 1213∼1259)이 사립교육기관인 구제(九齋)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놓고 공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중종 5년(1510)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에게 이 정자를 주었다고 하며 인조 5년(1627)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연미정은 월곶진(조해루)에서 관할하던 월곶돈대 안에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집이고 수백년 된 커다란 정자나무가 운치를 더해주고 주변에 “황형택지”가 있다. 또한 강화군에서는 48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월곶돈대 및 연미정, 월곶진의 발굴 및 복원공사를 실시해 앞으로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의 역사적 고난의 장소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며, 현재 운영되고 있는 해병대 제2사단 월곶검문소에 대해서도 주민 및 관광객의 편리를 위해 이전 설치하게 된다고 관계자는 밝혔다.한편, 강화조약은 교전 당사국들이 전쟁을 끝내기 위하여 합의하에 화해를 체결했다는 내용으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사상 여러번 있었던 조약을 말하는 것이며, 고종13년(1876) 현재 강화읍 서문입구의 연무당에서 조선과 일본간에 불평등 조약했던 체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강화조약" 과 "강화도조약" "연미정" 과 "연무당" 서로 비슷하나 혼동하여서는 안 된다. ▶찾아 가는 길 서울/인천방면 : 강화대교 끝 지점에서 우측으로 빠져나와 강화인삼 센터 주차장으로 진입 -> 철조망이 쳐져 있는 염하강쪽 해안도로로 이동 -> 좌회전 -> 염하강을 끼고 북쪽으로 약 4Km 정도 신나게 달리면 군부대 초소 -> 이 초소에 신분증을 제시 -> 연미정 (도보 약 5분) 강화읍방면 : 강화경찰서 -> 옥림리 방면 계속직진 -> 군부대초소 (신분증 확인 후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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