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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에 녹아든 비발디의 밝은 선율
  • 이상민
  • 등록 2013-04-05 13: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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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베네치아(Venezia)
베네치아의 중심 산 마르코 광장에서 스키아보니 해변으로 향한다. 다리를 세 개 건너가면 하얀 대리석 성당이 눈에 띈다. 그 앞 부두에는 곤돌라들이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넘실거리고, 출렁이는 파도에 반사된 햇빛은 이 성당의 정면에 아른거린다. 이 성당의 이름은 키에자 델라 피에타(Chiesa della Pieta’: 자비의 성당)인데 보통 ‘비발디 성당’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곤돌라가
곤돌라가 정박한 부두에서 본 스키아보니 해안. 비발디 성당이 보인다.
1678년 3월 4일 베네치아의 밝은 빛을 받고 태어난 안토니오 비발디는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 연주 실력이 뛰어나 산 마르코 대성당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아버지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는데, 이 ‘부자(父子) 듀엣’은 당시 ‘베네치아의 관광상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25세 때 신부가 되어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가르치게 되었다. 당시 베네치아에는 귀족들과 불륜의 관계로 태어난 아이들이 많았는데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는 이들이 버린 고아 소녀들을 보호하고 양육하던 고아원이었다.
이 곳에서는 어린 고아 소녀들에게 음악을 전문적으로 가르쳤는데 그 수준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도 무척 뛰어났으며 특히 비발디가 지휘하는 소녀 오케스트라는 명성이 전 유럽에 퍼질 정도로 유명해졌다. 
 
많은 세월이 지난 다음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 옆에 건축가 맛사리에 의해 ‘비발디 성당’이 세워진다. 그 때가 1760년. 비발디는 당시 이미 세상을 떠난 몸이었으니 이 성당이 세워진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유럽을 돌다가 말년에 베네치아에 다시 잠깐 되돌아왔을 때 건축가 맛사리에게 성당의 내부 음향에 관해 많은 조언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이 성당이 세워지고 난 다음 세월이 지나면서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는 없어지고 지금은 그 자리에 ‘메트로폴’이라는 호텔이 들어서 있다.  
"비발디
비발디 성당과 메트로폴 호텔.
비발디라면 단연 ‘사계’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계’는 모두 12개의 협주곡으로 이루어진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 Op. 8’의 첫 번째에서 네 번째까지의 협주곡이다. 이 네 개의 협주곡은 각각 모두 빠름-느림-빠름의 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테마에 맞게 독주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음악이 펼쳐진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각 협주곡마다 계절을 묘사하는 짤막한 소네트가 붙어 있다는 것이다. 즉 음악을 듣기만 해도 어떤 내용이나 풍경이 떠오른다. 이 소네트는 작곡을 위한 메모일 수도 있고, 그와 같은 내용을 묘사하려는 의도적인 것일 수도 있다. 그 중 특히 <봄>의 ‘제1악장 알레그로’는 묘사음악으로도 아주 뛰어나다. 
 
‘사계’라면 밝고 찬란한 베네치아의 풍경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비발디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소네트를 읽어보면 이 곡이 ‘음악으로 그린 베네치아의 풍경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로 <봄>을 보자.
봄이 왔다. 기쁜 봄이. 새들은 즐겁게 지저귀며 봄을 맞이하고
시냇물은 미풍의 숨결 속에서 졸졸 흐른다.
문득 천둥과 번개가 하늘을 온통 검은 장막으로 덮는다.
이윽고 주위가 잠잠해지자 작은 새들이 또 다시 노래를 부른다.

이제는 꽃이 만발한 초원 위에서 나뭇잎들이 즐겁게 속삭이고
양치기는 충실한 개 옆에서 졸고 있다.
목가적인 백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소리에
요정과 양치기는 눈부신 봄 하늘 아래에서 춤춘다.
이처럼 다른 계절을 묘사하는 소네트에서도 곤돌라라든가 운하라든가 산 마르코 광장 등 베네치아를 연상하게 하는 실마리는 전혀 없고 목동이나 농부나 사냥꾼들의 삶이 조명되어 있는데 이것은 베네치아와는 전혀 상관없다.
"비발디
비발디 성당 내부.
왜냐면 베네치아는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농업과 목축업이 아니라 순전히 해상무역으로 발전한 상업도시였다.
또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더 확장될 수 있는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사용 가능한 토지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베네치아는 한 뼘의 땅이라도 최대한으로 활용하기 위해 광장이나 해변의 산책로나 공원을 제외하고는 길의 폭을 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정도로 했으니 이곳에서는 마치 모든 대지가 어디에 꽁꽁 숨겨진 듯, 흙냄새와 풀냄새 나는 땅이라고는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베네치아는 농사를 하거나 가축을 방목하거나 사냥할 정도로 한가롭고 여유 있는 땅은 전혀 생각해 볼 수 없는 곳이다.
그렇다면 ‘사계’는 베네치아가 아닌 어느 시골풍경을 그린 일종의 ‘전원 교향곡’인 셈이다. 그런데 ‘사계’에 귀를 기울일 때면 아무래도 베네치아의 풍경이 마음속에 먼저 그려진다. ‘비발디=베네치아’라는 ‘브랜드의 힘’이 너무나 강해서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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