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시에 사는 박모(61)씨는 이번 어버이날(8일)에 아내와 둘이서만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자녀들에게는 어버이날 선물이나 식사는 따로 챙기지 말라고 했다.
최근 조선업 불황으로 반년째 실직 상태인 큰아들과 타지에서 월급 150만원으로 생활하는 딸을 배려한 것이다. 김씨는 "우리 부부는 평생 일하다 은퇴해 아직 먹고살 만한데, 일자리 문제 때문에 고생하는 자식한테 어버이날 같은 걸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20년 넘게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모(58·서울 동작구)씨 부부도 큰아들 부부에게 "이번 어버이날에 안 와도 된다"고 했다. 용돈이나 선물을 드리겠다는 아들 제의도 사양했다. 이씨는 "큰아들이 국내 대기업에 다니지만, 신입사원이라 연봉이 그리 높지 않다"며 "나보다 더 고생하면서도 적게 버는 것을 뻔히 아는데 어버이날 선물을 받으면 마음이 불편해서 받은 것보다 더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자식들에게 "어버이날을 따로 챙기지 말라"고 선언하는 5060 신중년(新中年) 부모들이 늘고 있다. 20대와 30대 초반 자녀들이 취업난과 박봉에 시달리는 반면, 부모 세대는 상대적으로 여유롭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50·60대 이상 가구주의 연간 소득은 2012년 각각 5196만원과 2345만원에서 2016년 6101만원, 3033만원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30대 미만 가구주의 소득은 2014년 3407만원에서 2015년 3406만원, 2016년 3282만원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 모든 연령대 중 평균 소득이 감소한 것은 30대 미만 가구주뿐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실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 1분기(1~3월) 20대의 체감 경제고통지수(체감 실업률과 체감 물가상승률을 더한 뒤 체감 경제성장률을 뺀 수치)가 30.6포인트로 모든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이런 자식 세대의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는 부모들은 "어린 애들이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냐"며 "어버이날은 내 돈으로 즐기겠다"고 한다. 서울 삼성동에 사는 주부 김모(56)씨는 "취업한 첫째도 월급이 아직 180만원밖에 안 되고 둘째와 셋째는 아직 취업 준비 중인 상태"라며 "우리보다 취업하기 힘든 시대에 태어나서 자기 앞가림하느라 바쁜 자녀들을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자녀들은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기도 어려운 현실이 '서글프다'는 반응이다. 서울 구로구 고시원에서 2년간 취업을 준비하다 최근 공무원시험으로 진로를 바꾼 김모(30)씨는 "부모님께 '어버이날 선물은 뭐가 갖고 싶으세요'라고 여쭈었다가 눈물을 왈칵 쏟았다"고 했다. 부모님이 "어버이날 선물할 돈으로 네 밥이나 좋은 것 사먹으라"며 "나중에 취업으로 선물하면 된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버이날이나 부모님 생신 때마다 '취업'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하고 못 지킨 게 벌써 3년"이라며 "취업해봐야 연봉 2500만원도 받기 힘든 현실을 생각하면 평생 고생하신 부모님께 죄송하기만 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