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제비들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일정한 거주지가 없으며 꽃제비들끼리 떼를 지어 함께 생활하기도 한다.
꽃제비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부모 잃은 아이들이 가여워 어른들이 동정심에 먹을 것을 주곤 했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사정이 날로 악화되면서 너나할 것 없이 어려운 환경에 처하자 꽃제비는 급증했고 꽃제비들간의 경쟁도 치열해졌다.
꽃제비 출신이라고 증언한 안산에 거주하는 한 탈북자는 부모님이 멀쩡히 살아있었지만 부양능력이 없었기에 자신이 구걸해온 먹을거리로 온 집안이 먹고 살았다고 했다. 그녀는 "부모가 없어야만 했던 생활"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향 근처가 바닷가였는데 배를 타고 돌아온 어른들을 기다리며 꽃제비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고 한다. 어른들은 일렬로 서 있는 꽃제비들 중에 어려보이고 연약해보이는 아이에게 생선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녀는 어린 마음에 그 생선을 받으려고 최대한 불쌍한 척을 했다고 증언했다.
하루는 배를 타고 돌아온 어른이 생선을 주며 "부모님이 돌아가셨니?"라고 물었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울먹이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사실대로 말하면 먹을 것을 받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부모님이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북한의 경제사정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자신이 구걸한 식량으로 부모님을 부양하는 아이들은 굶고 있는 부모님을 위해 부모가 있음에도 '없다'고 대답한다.
부모님을 위해 "부모님이 없다"고 이야기해야 하는 아이들,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살아있는 부모님을 죽었다고 말해야만 하는 북한 꽃제비들에게 언제면 먹을 것이 아니라 가족의 사랑과 행복 앞에서 웃는 날이 오게 될까? 뉴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