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주류(酒類)업체인 하이트진로가 신입사원을 포함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9일부터 3200여 모든 사원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1980~1990년대 매년 7~8% 이상 성장했지만, 최근 술 소비가 감소세로 돌아서자 매출 부진을 못 이기고 구조조정에 나선 것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국내 술 산업이 침체에 빠진 상황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강도 선제 대응 차원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내 1위 맥주업체 오비맥주는 지난해 4·11월 두 차례에 걸쳐 138명의 희망퇴직을 받기도 했다.
'세계 최대 폭음(暴飮)국'으로 불리던 한국의 주류 시장이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국내 1위 주류사가 감원을 포함한 구조조정에 착수하는가 하면, 세계 3위 주류업체가 한국법인 철수를 선언하고 있다. '국민 술'로 불리던 소주마저 소비가 줄기 시작했고, 국산 맥주 시장은 수입 맥주의 공세로 쪼그라들고 있다. 여기에 국내 양주 소비량은 음주 문화 변화로 8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 중이다.
국민 1인당 84병씩 마시던 소주의 경우 2015년에 전년 대비 소비량이 0.2% 줄었다. 소주 소비량이 줄어든 것은 사상 처음이다. 양주업계는 더 심각하다. 지난 8년 새 양주 소비량은 40% 넘게 빠졌다. 그러자 '임페리얼', '발렌타인', '앱솔루트' 등 유명 양주를 수입 판매하는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오는 7월 서울 강남(서초동)에 있는 사옥을 강북 지역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양주 업체가 비용 절감을 위해 강북으로 사옥을 옮기는 것도 처음이다. 페르노리카코리아는 앞서 지난해 6월 직원 40명의 희망퇴직을 받았다. 세계 3위 주류업체인 바카디의 한국법인 바카디코리아는 지난 8일 한국 시장에서 이달 말 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나마 사정이 낫다는 맥주 시장에서도 2015년 맥주 출고량은 전년 대비 1.7% 상승했지만, 국산 맥주만 놓고 보면 같은 기간 0.7% 감소했다. 국산 맥주의 경우 올 들어 대형마트·편의점 등 주요 유통 채널에서 점유율은 처음으로 50% 이하로 떨어진 상황이다.
외국에서도 경제가 성장하고 고령화가 진전되면 술 소비량은 감소한다. 일본의 주류 소비량은 2000년 92억7600만kL에서 2005년 84억2900만kL, 2010년엔 77억1700만kL로 줄어들었다. 저출산·고령화로 술을 주로 마시는 20~60세 인구 감소가 원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술을 즐겨 마시던 베이비부머 세대는 나이가 들면서 술을 적게 마시는 반면 젊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술을 적게 마시는 편"이라며 "특히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한국 사회의 술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주류업체들은 동남아 등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베트남 하노이에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알코올 도수 20도 정도의 '베트남 보드카'가 인기인 이 지역에선 한국 소주가 진출해볼 만하다는 판단에서다.
무학도 동남아 현지에 소주 공장 건립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창 건국대 교수는 “한국에서 소주 시장이 성장하는 데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해외 진출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일본의 주류업체들도 자국 내 술 소비량이 감소하자, 해외 업체 인수를 통한 신흥시장 진출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한편 하이트진로가 최근 입사한 신입사원에 대해서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도록 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2015년 두산인프라코어가 입사 1~2년 차의 신입사원들까지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했다가 사회적 비판이 커지자 신입사원은 희망퇴직 신청 대상에서 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