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들이 12조원 이상의 상속세를 분할납부하고 의료 공헌에 1조원, 2만3천여점의 미술품을 사회 환원하기로 했다.
28일 삼성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과 홍라희 여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상속인이자 고 이건희 회장 유족들은 이 회장이 남긴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 전체 유산의 절반이 넘는 12조원 이상을 상속세로 납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국가 경제 기여, 인간 존중, 기부 문화 확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함이다.
이 회장 유산은 주식과 미술품, 부동산, 현금성 자산 등을 합해 총 30조원 규모로 업계는 추정되고 있다. 보유한 삼성전자(4.18%)와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삼성SDS(0.01%) 등 삼성 계열사 주식가치만 약 19조원에 달하고 주식 상속세액만 11조400억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유족들이 납부하게 될 상속세는 12조원 이상으로 전 세계적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한국 정부의 전체 상속세 세입 규모의 3~4배 수준에 달하는 금액이기도 하다.
유족들은 이 상속세를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이달 4월부터 향후 5년 간 6차례에 걸쳐 분할 납부할 계획이다. 아울러 고인인 이 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대규모 사회 환원도 하기로 했다.
삼성은 이 회장이 평소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할 것"이며 "인류의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기업의 사명이고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고 강조하는 등 사회와의 '공존공영' 의지를 담아 삼성의 각종 사회공헌 사업을 주도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고통받고 있는 시기에 맞게 감염병 극복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7천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 중 5천억원은 한국 최초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된다.
나머지 2천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가 최첨단 연구소를 건축하고 필요 설비를 구축하는 데 보태고 감염병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쓰일 예정이다.
소아암이나 희귀질환을 앓는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3천억원을 투입한다. 비싼 치료비 때문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서다.
향후 10년간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들 가운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환아를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치료, 항암 치료, 희귀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할 계획이다.
이중 백혈병·림프종 등 13종류 소아암 환아 지원에 1천500억원, 크론병 등 14종류의 희귀질환 환아들을 위해 600억원을 지원한다.
이를 통해 앞으로 10년 동안 소아암 환아 1만 2천여명과 희귀질환 환아 5천여명 등 총 1만 7천여명이 도움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소아암·희귀질환 임상연구나 치료제 연구 등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도 9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유족들은 서울대어린이병원을 주관기관으로 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소아암, 희귀질환 어린이 환자 지원 사업을 운영하기로 했다.
이 회장이 개인 소장했던 미술품은 국민에게 환원하기로 했다. 국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작가 근대미술 작품 등 총 1만 1천여건(2만 3천여점)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한다.
여기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 고려 불화 '천수관음 보살도(보물 2015호)' 등 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을 비롯해 국내에 유일한 문화재 또는 최고(最古) 유물과 고서, 고지도 등 개인 소장 고미술품 2만 1천600여점은 국립박물관에 기증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등 한국 근대 미술 대표작가들의 작품 및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작가들의 미술품과 드로잉 등 근대 미술품 1천600여점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
지정문화재 등이 이번과 같이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된 전례가 없어 국내 문화자산 보존은 물론 국민의 문화 향유권 제고와 미술사 연구 등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족들은 또 생전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고인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방침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관계사들이 기존에 진행하고 있는 사업 외에도 다양한 사회공헌 방안을 추진해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창업이념을 실천하고 '새로운 삼성'으로 거듭난다는 취지다.
이에 유족들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으며, 사회 환원 계획 등에 대해 삼성 측은 "이번 상속세 납부와 사회환원 계획은 갑자기 결정된 게 아니라 그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