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속세를 떠나 있는 절다운 절을 보기가 힘들어졌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름없는 작은 암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절집들은 자동차와 관광객들로 넘칩니다. 산사의 고요함과 고즈넉한 가을분위기를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길품은 수월해졌지만 대신 그 옛날 우리를 감동시키던 고색창연한 산사의 풍경은 점차 사라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전라북도 고창군 문수사는 그 외풍으로부터 아직 의연합니다. 첩첩산중에 묻혀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한 채 학처럼 고고합니다.
우선 이 절을 찾아가는 길부터가 남다릅니다. 위락시설로 흥청대는 여느 사찰과는 달리 음식점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드문드문 산골 농부의 외딴집만이 이정표가 되어줄 뿐이죠. 그러나 이 길은 그냥 산길이 아닙니다. 오롯이 펼쳐져 있는 이 길은 속세를 등지고 저 깊은 마음의 세계를 향해 가는 '구도자의 길' 과 같습니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전라북도 고창 문수사.
여기서부터는 부처님의 세상이라고 알리는 일주문 앞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면 문수사가 얼마나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주차장이래야 고작 10여대의 승용차를 세울 수 있는 협소한 공간뿐이지만 왜 가을이면 문수사를 찾아야 하는지, 차에서 내리면서 말을 하지 않아도 금방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온 산이 천연기념물인 단풍나무 숲으로 둘러쌓여 마치 산불이라도 난 듯 붉은 색으로 물들어버린 가을의 장관을 뽐냅니다. 이곳에 오면 누구라도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파아란 하늘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 붉은 단풍길을 따라서 휘적휘적 10여분쯤 오르면 깊은 산골짜기에 둥지를 틀고 앉아있는데 그 첫인상이 흡사 도솔천에라도 올라온 기분입니다.
▷붉은 단풍길을 따라 걷는 문수사 길.
스님들의 공부에 방해될까봐 폭신하게 낙엽이 가득 쌓인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가면 큼지막한 돌의자가 하나 놓여져 있고 세상의 사람들 수만큼이나 많은 낙엽들이 "가을이에요. 문수사의 계절입니다." 라고 속삭이는 듯 느껴질만큼 작은 바람에도 바스락 바스락 거리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계단 아래에는 보석들이 빨갛게 매달린 듯 주렁주렁 열린 감들이 절집을 지키고 있어 “스님, 이 감 하나 따 먹어도 될까요?” 하고 물으니, “허허 그러시구려..... 까치가 먹을 것만 남겨놓으면 될거요.” 라고 답하십니다.
▷문수사 계단 아래에는 보석들이 빨갛게 매달린 듯 열린 감들이 주렁주렁 하다.
그물에도 걸리지않는 바람처럼 시원스레 대답하시는 스님의 말씀이 가을처럼 풍요롭기만 합니다.
마당가에 있는 장독대는 스님들의 정성스런 손길로 잘 닦여져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운데 늦가을 오후의 햇볕이 스며들어 장맛에 갱미가 더해질 듯 해 보입니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마당의 장독대가 아름답다.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가니 이끼가 세월의 두께만큼 올라앉은 부도들이 언제부터인지 오도카니 앉아있습니다. 노오랗게 물든 단풍나무는 행여 추울세라 낙엽을 떨어뜨려 부도 뿐 아니라 온 세상을 다 덮어버렸습니다.
부도전에 들어서면 세상은 노란색과 빨간색의 두 가지 색만이 존재한다고 믿게 됩니다. 그곳의 풍경이 딱 그렇거든요.
▷부도전에 들어서면 세상은 노란색과 빨간색, 두가지 색만 존재한다.
보석같은 가을단풍을 간직한 곳, 문수사
우리나라에서 단풍이 유명한 곳은 많습니다. 가을이 시작되면 강원도 설악산을 시작으로 해서 속리산 법주사의 단풍과 내장사, 백양사의 단풍이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산으로 유혹하지만 정작 숨어있는 보석은 말을 하지않아도 스스로 빛을 내는 법.
▷어느 여행서에도 나와 있지만 천연 단풍나무 숲이 존재하는 곳은 고창 문수사 뿐이다.
어느 여행안내서를 찾아보아도 고창 문수사의 이름 석자는 나와있지 않지만 천연기념물 단풍나무숲이 존재하는 곳은 고창 문수사 뿐인 것은 가을이 증명합니다. 비교적 조용하면서도 보석같이 아름다운 가을을 제대로 즐기려면 고창 문수사의 단풍나무숲으로 들어가보는 것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