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호쾌한 박치기로 거구들을 쓰러뜨리며 전 국민을 흥분시켰던 프로레슬러, ‘박치기 왕’ 김일씨가 26일 서울 노원구 하계동 을지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77세.어려웠던 시절 전 국민을 흑백 TV 앞에 끌어모았던 김일은 당시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역도산 만나려 일본 밀항1929년 전남 고흥의 한 섬마을에서 태어난 김일은 청년 시절 마을 씨름대회를 휘어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잡지에서 역도산의 기사를 보고 1956년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했다. 밀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한 그는 곧 경찰에 잡히게 되고 1년간의 형무소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형무소 생활을 하면서도 김일은 역도산에게 프로레슬링을 배우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끊임없이 보냈다. 이에 역도산은 김일을 형무소에서 빼낸 다음 1957년 그를 문하생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김일은 지옥훈련을 견디며 박치기 기술을 연마, 링에 올랐다.◆말년 좌절과 불행 잇따라66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아시아태그 경기에서 챔피언에 오른 김일은 이듬해 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 최고의 인기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평탄하지 못했다. 87년 아내를 백혈병으로 떠나 보냈고 경기 후유증으로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자신도 줄곧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군대에 보낸 막내 아들마저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내면서 실의에 빠지기도 했다.70년대 중반 이후 현역에서 물러난 그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다양한 사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면서 좌절을 맛봐야 했고 지병은 점점 악화했다.◆장영철과 뒤늦은 화해김일은 병원 치료 중 지난날을 정리라도 하듯 지난 2월 일본에 있는 역도산의 묘지를 방문했고 ‘레슬링 쇼’ 파문으로 41년간 서로 등을 돌리고 지내왔던 장영철을 방문해 뒤늦게 화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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