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 특별연설] “다음 정부에 큰 부담 안 넘기겠다”
노무현 대통령은 23일 “지금 저의 관심은 성공한 대통령이나 역사의 평가가 아니다”며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역사의 평가인지를 생각하기 전에, 저는 제가 국민 여러분에게 한 약속, 그리고 이 시대가 제게 부여한 사명을 다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10시부터 TV 생중계로 방송된 신년특별연설을 통해 참여정부 4년간의 정책과 실적을 국민들에게 보고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 대통령은 먼저 민생문제와 관련, “민생이라는 말은 저에게 송곳이다. 지난 4년 동안 저의 가슴을 아프게 찌르고 있다”며 “참으로 면목이 서지 않는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지금의 민생문제는 옛날의 민생문제와는 다른 새로운 현상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바로 양극화 현상이다. 세계화, 정보화가 원인”이라며 “경제만 좋아진다고 민생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양극화 문제가 해결돼야 민생이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민생문제 해결하려면 함께 가는 경제 만들어야”노 대통령은 민생문제 해결대책으로 “양극화를 해소하려면 함께 가는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동반성장, 상생협력, 균형발전 이런 정책이 성공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부동산, 사교육비와 같이 격차를 더 벌리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개인의 직업능력을 향상시키고, 어려운 사람, 낙오한 사람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어야 한다”며 “정부가 이런 일을 하면 소득의 재분배가 일어나고 빈부 격차가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결국 양극화를 해소하자면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사회정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정책이 동원되어야 한다”며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책임은 통감하지만, 만든 책임은 없다. 참여정부의 민생문제는 물려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문제와 관련, 노 대통령은 “경기와 경제는 구별해서 사용해야 한다”며 “단기적인 거시경제의 운영은 경제정책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장기 경제정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 보도를 보고 있으면, 어느 때는 ‘인위적 경기부양 안 한다’ 이런 제목으로 은근히 정부의 무성의를 비난하는 보도가 나오다가, 어느 때는 ‘선심성 경기부양’이런 제목으로 경기부양을 비난하는 보도가 나온다”며 “이것은 참여정부가 ‘무리한 경기부양은 하지 않겠다.’고 한 말에 대한 해석에 혼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어려움 이겨내고 ‘무리한 경기부양’ 하지 않았다”노 대통령은 “참여정부도 경기의 활력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며 “경제이론이 허용하는 모든 경기 부양책을 다 동원했다. 다만 후유증이 우려되는 ‘무리한 경기부양’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도시건설 경상수지적자 실용불량자문제 등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무리한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부작용을 예로 들어 설명한 노 대통령은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며 “그러나 저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 원칙을 지켜냈다”고 역설했다. 이어 “그 결과는 다음 정부에서 나타날 것”이라며 “다음 정부는 어떤 후유증도 물려받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는 넘겨받은 위기를 무난히 관리했다”며 △출범 초기의 북핵위기 △284만명의 신용불량자와 소비감소 △해외조달 가산금리 폭등 △SK글로벌사태와 90조원대에 이르는 카드채 등을 위기극복 사례로 들고 “결국 신용 불량자는 2004년 4월, 382만 명을 고비로 줄어들기 시작하여 2006년 말, 283만 명 수준까지 내려왔다. 소비도 그와 함께 움직였다”고 어려웠던 과정을 회고했다. “참여정부 경제실적은 악조건 극복하고 이룬 성과”노 대통령은 이어 “2002년 1600억 달러였던 수출이 지난해에는 3000억 달러를 넘어섰다”며 “지난 4년 경상수지 흑자 합계가 600억 달러를 넘는다. 외환보유액도 1200억 달러에서 2400억 달러로 4년 동안 두 배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또 “종합주가지수는 600선에서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소비자 물가도 3.6%에서 3% 수준으로 안정돼 있고, 실업률도 3.7%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외환위기로 무너졌던 현대건설, 하이닉스, LG카드, 대우건설 등 부실기업도 정상화되었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그 동안 수입원유 가격은 배럴당 24달러에서 60달러 선으로 2.5배 가까이 급등했고, 환율은 달러당 1200원 선에서 평균 940원 선으로 떨어졌다”며 “악조건을 딛고, 경제위기를 극복하면서 이룬 성과”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기술혁신과 인재양성을 통한 기업경쟁력 강화 △기업하기 좋은 환경제공 △소비와 투자가 활발한 시장 형성 △개방을 통한 경제자유구역, 금융, 물류 등의 동북아허브전략 △노사관계 안정화 △안정된 에너지와 인적자원 공급확대 등과 각각의 성과를 설명했다. “사회적 자본 충실한 사회여야 경쟁력 높아진다”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한 사회적 환경에 대해 노 대통령은 “경제는 경제 원리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며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하는 사회적 환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이 쾌적한 환경, 안정된 주택에서 문화와 여유를 누리고, 질병과 노후, 자녀교육에 대한 불안이 없고, 성취의 기회가 열려 있어야 창의와 활력이 넘치는 경제를 만들 수 있다”며 “사회투자가 중요한 이유”라고 역설했다. 이어 “사회적 자본이 충실한 사회라야 경쟁력이 높아진다. 신뢰가 바로 선 사회, 통합이 잘 되는 사회가 그런 사회다.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 원칙이 있는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신뢰의 수준과 예측 가능성이 높은 사회다. 균형 잡힌 사회,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사회가 갈등이 적고 통합성이 높은 사회”라며 “동반성장, 상생협력, 균형발전이 필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성숙한 민주주의와 안보·안전을 들고 “이 모든 일을 하는데 정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 잘하는 정부, 책임 있는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참여정부가 정부혁신에 매달려온 이유”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사회투자 실적으로 △2006년까지 복지 분야 예산이 연간 20%씩 증가 △보육예산이 다섯 배 증가 △장애인 예산 2002년 3200억에서 2007년 6,700억으로 증가 △치매, 중풍 노인을 돌보는 노인수발보험제도 내년부터 본격 실시 △서민 의료비 부담 경감 △체계적인 고용지원서비스·직업훈련시스템 구축 등을 꼽았다. “한국의 사회투자 아직 갈 길이 멀다”노 대통령은 그러나 “한국의 사회투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GDP 대비 공공사회지출이 문민정부 3.2%, 국민의 정부 5.6%에서 2005년에는 8.6%로 늘어났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 한심한 수준에 있다. 미국, 일본의 2분의 1, 북구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고용지원 예산은 북구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며 “2030년까지 지금의 OECD 평균 수준까지는 가자는 것이 비전 2030의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언제부터인가 작은 정부론이 우리사회에서 진리처럼 통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에게 작은 정부론은 맞지 않는다. 할 일 하는 정부, 책임을 다하는 정부, 효율적인 정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복지지출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 전반을 보더라도 국가와 지방공무원, 공공기관 인력을 포함한 인구 1000명당 공무원 수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24.1명에 불과하여,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의 1/3 수준, 일본의 32.9명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라며 “한국의 지도자들은 작은 정부를 말할 것이 아니라 책임을 다하는 정부, 효율적인 정부를 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사회 진보개혁 세력은 개방에 대한 인식 바꿔야”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진보개혁 세력이 앞으로 정치적·사회적으로 주도적인 세력이 되기 위해서는 개방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의 대세를 수용해야 한다”며 “초기에 FTA와 관련하여 여러 비판론이 무성했지만 결국 지금은 아무 근거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또 “역시 남은 것은 농업 문제인데 이 문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1/3은 교역가능성이 낮거나 우리가 우위에 있고, 1/3은 경쟁 대상이다. 나머지 1/3이 취약한 부분인데 그 대부분이 쌀에 관한 것”이라며 “그런데 이미 쌀은 WTO에서 합의가 되어 있는 것이고 FTA 문제가 아니다. 이에 관해서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 놓았고 앞으로도 계속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양극화 해소와 동반성장, 균형발전, 일자리 경제, 비정규직, 영세 자영업의 문제, 부동산과 주택 문제, 교육문제 등의 개별과제에 대해 언론보도의 문제점 등을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 평화와 안전”안보정책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라며 “통일은 그 다음이다. 통일을 위해 평화를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화를 위한 전략의 핵심은 공존의 지혜”라며 “화해와 협력, 공존을 위한 지혜의 요체는 신뢰와 포용”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물론 군사적인 대비는 확실하게 해야 한다”며 “포용은 설사 상대가 속이는 일이 있더라도 낭패를 보지 않을만한 힘을 가진 강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대비할 수 있는 적절한 억지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 이것이 우리의 포용정책”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우리의 안보는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고, 손해도 안보고, 자존심도 세우겠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의 나라 군대를 최전방에 배치해놓고 ‘인계철선’ 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주국가의 자세도 아니고 우방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며 “현실의 의존보다 심리적 의존이 더 큰 문제”라고 밝혔다. 또 “미 2사단의 후방 배치,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을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작전 통제권을 돌려받기로 한 것은 이러한 의존상태를 조금씩 줄여나가자는 뜻”이라며 “주도적인 작전통제권은 자주국가의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안보정책, 미래의 동북아 질서 내다보고 가고 있다”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안보정책은 미래를 내다보고 가고 있다”며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이라는 현재의 좁은 틀이 아니라, 중일 관계의 변화를 포함한 미래의 동북아 질서를 내다보면서, 현재와 미래의 안보를 조화롭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소고했다. “그러자면 이른바 균형외교가 필요하다”고 밝힌 노 대통령은 “동북아의 다자간 안보체제라는 비전을 가지고 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9.19선언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 원칙을 확인한 바 있다. 지금 당장은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이러한 노력은 장차 우리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은 6자 회담이 어떤 결론이 나기 전에는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저의 입장”이라며 “그러나 문은 항상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상회담이 어느 당에 유리하고 불리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2000년 총선에서 입증된 바 있다”며 “정상회담이 어느 정당에 불리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아직 아무 교섭도 실체도 없는 정상회담을 가지고 정상회담을 구걸하지 마라, 정상회담을 하면 안 된다, 하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노 대통령은 2만달러 시대의 국가발전 전략과 비전 2030과 관련, “빠르면 올해 안에 우리나라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들어간다. 95년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어선 지 12년만의 일이고, 외환위기를 겪고 다시 1만 달러에 진입한 지 7년만”이라며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가는 데 미국은 10년, 독일은 13년 걸렸고, 영국과 네덜란드는 그 과정에서 경제위기를 맞기도 했다. 싱가포르 같은 도시형 국가를 제외하고는 2차대전 이후 해방된 나라 중에서 2만 달러에 들어선 나라는 아직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3만 달러 시대로 가는 일이 남았다”며 “3만 달러 사회로 가려면 그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 한국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이를 가로막는 강력한 불안요소로 양극화,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빠른 진행, 남북의 대결상황, 동북아 질서의 불안정 등을 꼽고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국가발전전략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혁신, 능동적 개방, 동반성장, 균형발전, 사회투자, 사회적 자본, 평화의 동북아 등”이라고 밝혔다. “개헌 제안 안했으면 직무방기 비방할 것”노 대통령은 이어 개헌문제에 대해 “우리 헌법에는 고쳐야 할 조항이 많이 있다. 지난날 독재 헌법을 직선 헌법으로 만들면서 대충 손질한 불완전한 헌법이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이번에 1단계 개헌을 하지 못하면, 앞으로 20년간 개헌은 불가능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개헌은) 여야의 지도자들과 모든 언론들이 하자고 하던 것”이라며 “만일 제가 개헌을 제안하지 않았다면, 이후에 개헌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일부 언론은 20년 만에 한번 오는 좋은 기회에 노 정권이 직무를 방기한 것이라는 비방을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주의 언론이 아니라 시민의 언론이 돼야” 언론의 특권과 횡포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한 노 대통령은 “특권과 반칙의 구조를 해소하는 것은 이 시대의 역사적인 과제”라며 “저는 우리 언론이 정확하고 공정한 언론, 책임 있게 대안을 말하는 언론, 보도에 책임을 지는 언론이 될 때까지, 그리고 스스로 정치를 지배하려는 정치권력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시민의 권력으로 돌아가고, 사주의 언론이 아니라 시민의 언론이 될 때까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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