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단체 고발 불허에 "생존권박탈 다름없어…"
“평생을 고로쇠 물만 따왔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지난 7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 자락 해발 750㎙에 위치한 전남 구례군 산동면 심원마을. 고로쇠 수액 채취시즌을 맞아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작업에 나서도 모자랄 때지만 심원마을 주민들은 일손을 놓은 채 산이 꺼질 듯 한숨만 내쉬고 있다. 구례군이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지리산 노고단과 만복대 일대(47㏊)에서 유일한 생계수단인 고로쇠물 채취를 금지했기 때문.
구례군이 고로쇠 수액채취 금지령을 내린 것은 1월초. 2001년 9월 환경부가 이 일대를 자연보존지구로 지정한 이후에도 관행을 이유로 수액채취를 묵인해왔던 구례군은 지난해 10월 시민환경단체인 국립공원시민연대가 환경훼손 등을 이유로 공원관리를 맡고 있는 지리산관리사무소 남부지소 관계자들을 고발하자 올해부터 채취를 불허한 것.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심원마을 일대 고로쇠 농가는 28가구 100여명. 주민들은 매년 우수(19일)에서 경칩(3월5일)사이에 채취한 고로쇠 수액 6만5,000여ℓ를 팔고 민박 등으로 벌어들인 3,000만원 남짓의 소득으로 1년 생계를 유지해왔다.
졸지에 생계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불법이라도 수액채취를 하겠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은 불문가지. 주민 김학철(58)씨는 “400여 만원을 들여 수액채취 장비를 사들였는데 무용지물이 돼버렸다”며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과태료를 물더라도 불법 채취를 할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이장 김동현(66)씨도 “한 두 달 반짝 일해 1년을 먹고 사는 주민들의 고로쇠 수액채취를 불허한 것은 생존권을 박탈과 다름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환경단체 등에서 고로쇠 채취농가를 자연환경 훼손의 주범으로 꼽는 데 대한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구례 피아골 고뢰쇠수액 영농조합법인 강인기 부회장은 “고로쇠물 채취가 주민들의 수입원인 탓에 주민들이 환경단체보다 나무를 더 아끼고 있다”며 “더구나 수액채취가 생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임업연구원의 연구발표도 있는데 환경훼손을 이유로 채취를 금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구례군은 환경부에 수액채취허가와 함께 자연보존지구 재조정을 골자로 하는 법령 개정을 건의하는 등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환경부는 자연생태계 보존 등을 위해 자연보존지구 내 고로쇠 수액채취 금지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우선 주민들에게 수액채취가 허용된 지리산 국립공원 내 자연환경지구로 이동해 채취토록 한 뒤 장기적으로는 대체 조림지를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주민들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자연보존지구에서 수액 채취는 허가할 수 없다”며 “현재로서는 대체 수액채취지역을 만드는 게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환경부의 대안이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라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주민 선모(56)씨는 “자연환경지구로 채취구역을 옮기면 적어도 2~3시간은 산을 타야 한다”며 “사실상 수액채취를 하지 마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비난했다.
구례군 관계자는 “환경부가 내놓은 대안은 주민 감정만 자극하고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며 “당장 법 개정이 불가능하다면 주민들에게 자연보존지구 내 임시 채취허가를 내주는등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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