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딩크 에인트호번행 무산...스페인행 후 ‘실패 낙인’만
“빅리그 징검다리 이번엔 꼭”말 많고 탈 많던 이천수의 유럽 이적이 이적시장 마감 직전에 극적으로 성사됐다. 새 둥지는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네덜란드의 대표 클럽 페예노르트 로테르담. 우리에겐 2002 한일월드컵 직후 송종국이 몸 담았던 곳으로 잘 알려진 팀이다. 지난 여름부터 포츠머스, 위건, 풀럼 등의 프리미어리그 클럽과 이적 얘기가 오갔지만 선임대 후이적이라는 조건과 낮은 이적료로 매번 무산된 이천수는 소위 ‘빅리그 징검다리’로 불리는 네덜란드를 거쳐 큰 무대 재입성을 노리는 전략으로 우회했다.그런데 이천수는 이미 4년 전에 네덜란드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그 기회를 제시한 사람은 다름 아닌 거스 히딩크 감독.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PSV 에인트호번의 지휘봉을 잡은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과 이영표를 데려갔고 세 번째 후보로 이천수를 지목했다. 2003년 2월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올림픽대표팀 평가전에서 이천수는 로번(현 레알 마드리드), 판 페르시(현 아스널)를 압도하며 네덜란드를 1-0으로 꺾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현장에서 이천수의 활약을 재확인한 히딩크 감독은 곧바로 이적을 논의했지만 낮은 이적료가 발목을 잡았다. 에인트호번이 제시한 이적료는 110만 달러 수준. 울산은 이적을 불허했고 4개월 뒤 이천수는 400만 달러라는 당시 한국 선수 최고 이적료를 기록하며 프리메라리가로 직행했다.누구의 도움 없이 실력 하나로 빅리그 진출을 이뤄냈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박지성은 무릎 수술의 여파로 부진을 겪는 위기 속에서도 히딩크 감독의 배려로 차곡차곡 유럽 축구에 적응해 갔지만 이천수는 레알 소시에다드 입단 후 이듬해 감독이 바뀌며 팀 전술에서 제외됐고 리그 최하위 누만시아로 임대, 실패라는 낙인이 찍힌 채 2005년 여름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재능 면에서 차이가 없다던 박지성과 이천수의 인생 항로가 선택 하나로 크게 엇갈린 것이다. ‘만약’이라는 가정법이 구차하긴 하나 이천수가 에인트호번으로 향했다면 지금쯤 어떤 팀에서 뛰며 어떤 성과를 이뤄냈을까? 결국은 이렇게 맺을 운명이었는데 4년을 돌아왔다는 게 안타깝고, 허무한 것이 이천수의 페예노르트 행을 보는 또 다른 시선이다.
-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