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가 미성년 자녀 명의의 통장을 통해 민원인으로부터 장학금 명목으로 돈을 받았다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위반에 해당하며, 이에 따른 징계도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경찰공무원인 A씨는 딸의 장학금 명목으로 299만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며 청탁금지법 위반을 이유로 강등 처분을 받자 징계가 부당하다며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이 소송 대해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조미연)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서울 관내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16년 12월 절도 관련 오인신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민원인 B씨와 친분을 쌓게 됐다. 이후 2017년 B씨로부터 당시 11살이던 자신의 딸 명의의 통장을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전달했다. B씨는 이 통장에 "딸의 장학금"이라며 2017년 7월 100만원을 시작으로 8월과 9월 각각 99만원과 100만원 등 총 299만원을 입금했다.
현행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아서는 안 된다(제8조 제1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알게된 서울지방경찰청은 2018년 4월 A씨가 김영란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징계위원회와 소청심사위를 거쳐 강등 처분 및 징계부가금을 부과했다.
A씨는 강등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A씨는 "B씨가 딸에게 장학금 등을 줄 명목으로 통장에 돈을 넣은 것이기 때문에 딸이 받은 것이며, 자신이 돈을 수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1회 100만원을 초과하여 입금된 것이 아니며, 총 입금된 돈의 총액이 299만원에 불과해 김영란법을 위반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딸이 미성년자였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299만원은 A씨가 수수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또 1회 100만원을 초과하지 않았다고 해도 입금액이 제한범위에 근접하기 때문에 김영란법을 위반했다고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도 봤다.
재판부는 "A씨와 B씨의 관계 및 자녀가 미성년자에 불과하다는 점 등에 비춰보면 자녀 명의 통장으로 입금된 금원 전부에 대해 A씨가 수수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범죄수사 등의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공무원으로서 높은 도덕성과 윤리성, 준법의식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에 위배해 청탁금지법 등을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또 "형식적으로 1회 100만원을 초과해 입금된 것은 아니나 매우 근접한 기간에 입금이 이뤄졌고, 각 입금액이 청탁금지법이 금지하는 제한범위에 거의 근접한 액수"라며 "편법적으로 청탁금지법을 탈피해 금원을 분할제공하는 행위 등에 대해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2심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음 달 선고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