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현장에서 10여명의 주민을 대피시키고 구조하다 부상까지 입었던 카자흐스탄 출신 이주 노동자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국민청원이 등장했다.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노동자 율다쉐브 알리 압바르(28)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내용이 담긴 청원글 3건 올라와 모두 합쳐 현재 3500여 명이 동의했다.
청원에는 "카자흐스탄 출신 이주노동자가 화재 현장에서 불법체류 신분에도 불구하고 10여명의 한국인의 생명을 구했다. 불법체류 신분이 드러날 위험이 있어서 도주할 수도 있었지만, 생명을 살리겠다는 신념으로 의로운 일을 행했고 많은 생명을 살렸다”며 “영주권을 줘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하고 국가가 인정한 의인으로 선정해 합당한 혜택을 누리고 명예로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앞서 카자흐스탄이 고향인 알리(28)씨는 지난달 23일 오후 11시 22분께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에 있는 자신의 원룸으로 들어가다 화재가 발생한 것을 발견하고 주민 10여명을 대피시켰다. 이후 2층에 있던 50대 여성을 구조하기 위해 도시가스관과 옥상에서 늘어진 텔레비전 유선줄 등을 잡고 불길이 치솟은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그도 목과 등, 손 등에 2~3도의 화상을 입었지만, 불법체류 사실이 알려질 것이 두려워 급히 현장을 떠났다.
하지만 상처가 심해 서울의 한 화상 전문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이 과정에서 불법체류 사실이 밝혀졌다. 알리씨는 2017년 카자흐스탄에서 관광비자로 입국했으며 한국에서 20만원짜리 작은 월세방을 전전하며 일용직으로 일했다. 공사현장에서 번 돈으로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아내, 두 아이를 책임져왔다.
알리씨의 사정을 알게 된 이웃 주민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알리씨의 병원비를 부담하고 있다. 의료보험도 없는 그를 위해 이웃들이 부담한 치료비만 700만원에 이른다.
지난 16일 알리씨는 출입국외국인사무소에 불법체류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 불법체류 사실을 자진 신고한 탓에 그는 5월1일이면 한국을 떠나야 할 처지에 놓였다. 선행을 하고도 쫒겨나게 된 것.
이에 이웃 주민들은 알리씨를 위해 의사상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들이 나서서 지난 16일 양양군에 의사상자 지정 신청을 했다. 의사상자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과 신체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행위를 하다가 죽거나 다친 사람을 말한다. 사망한 사람은 의사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의상자로 구분한다. 알리씨가 의상자로 인정되면 법률이 정한 보상금과 의료급여 등의 최소한 예우를 받을 수 있다.
옆집에 사는 이웃 장선옥 손양초교 교감은 “치료를 받던 알리에게 ‘신분이 들통날 텐데 왜 불 속으로 뛰어들었어? 왜 구했어?”라고 물었더니 ‘사람은 살려야 하잖아요’라는 답변을 들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 말을 듣고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장 교감은 이어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알리는 아직도 현장에서 숨진 아주머니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잠을 설치고 있다. 아무리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열 명 이상의 한국인을 구하다 다친 알리를 아무런 보상 없이 내쫓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조처”라고 하소연했다.
앞선 2018년 스리랑카인 니말(41)씨가 2017년 2월 경북 군위군 고로면에서 발생한 화재 현장에서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 90대 할머니를 구한 것이 인연이 돼 불법체류 스리랑카인으로는 처음으로 영주권을 받은 바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돼 영주권을 받게 된 첫 사례다.
양양군도 불법체류자 신분이며 5월1일 출국을 앞둔 알리씨를 위해 대신 보건복지부에 의사상자 신청을 할 계획이다. 양양군 관계자는 “일단 신청을 위해 사실관계 확인 등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있다. 개인이 직접 신청해도 되지만 알리씨는 불법체류를 하고 있고 곧 출국해야 할 처지라 군에서 직권으로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