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진압작전에 투입됐던 공수부대원이 자신이 쏜 총에 맞아 숨진 희생자의 유족을 만나 사죄했다. 계엄군이 자신이 직접 사살한 사망자의 유족을 만나 용서를 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7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5·18진상조사위)에 따르면, 항쟁 당시 특전사 7공수 특전여단 부대원이었던 A(66)씨는 지난 16일 오후 3시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희생자 유가족과 만남을 갖고 사죄와 용서를 구했다.
A씨는 5·18묘지에 안장된 박씨의 묘역을 찾아 무릎을 꿇고 참배했다. 이날 A씨의 참배에는 박씨의 형과 동생 등 유가족 3명이 함께했다. A씨는 5·18 당시 25세였던 박씨에게 총격을 가해 사살한 당사자다.
박씨는 1980년 5월23일 농사일을 돕기 위해 광주에서 고향인 보성으로 가던 중 광주 남구 노대동 노대남제 저수지 부근을 지나던 중 7공수여단 33대대 8지역대와 마주쳤다.
박씨 일행이 놀라 도망치자 8지역대 소속이었던 A씨는 곧바로 M16 소총으로 사격을 가했고, 박씨는 머리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 A씨 부대원들은 죽은 박씨를 인근 야산에 묻고 철수했다.
이후 박씨의 시신은 5·18 직후 가족들에 의해 6월2일 발견됐다. 이때 A씨는 전역한 뒤였다.
5·18 당시 숨진 시민들의 개별 사망경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5·18진상규명위는 지난 1월 A씨 부대가 박씨 사망장소에서 작전을 폈던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관들이 찾아가자 A씨는 “내가 비무장한 사람을 사살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
A씨는 2차례 면담에서 “당시 정찰을 하다 도망가는 민간인이 있었는데 (부대원 중)나만 무의식적으로 총을 쐈고 부대원들이 매장했다”면서 “박씨는 단지 겁에 질려 도망가던 상황이었다”고 진술했다.
A씨가 진술한 지역에서 사망한 시민은 박씨가 유일했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박씨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A씨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뒤 유가족을 만나 용서를 빌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지난 1월에는 혼자 광주를 찾아 박씨의 묘역을 참배하고 사죄하기도 했다.
이날 2시간여 동안 박씨의 유가족을 만난 A씨는 “어떤 말로도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드려 죄송하다. 사과가 또 다른 아픔을 줄 것 같아 망설였다"며 유가족에게 큰절을 올렸다.
또 "40년간 죄책감에 시달렸다. 이제라도 유가족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오열했다. 박씨의 형인 박종수씨(73)는 “늦게라도 고맙다. 죽은 동생을 다시 만났다고 생각하겠다”며 “과거의 아픔을 다 잊어버리고 떳떳하게 마음 편히 살아달라”고 A씨를 포옹했다.
한편, 5·18진상규명위는 “5·18 당시 시민들을 사살했다”는 당시 계엄군 3~4명의 증언을 확보하고 사망한 시민이 누구인지를 추가로 추적하고 있다. 5·18진상규명위 관계자는 “A씨처럼 계엄군들이 당당히 증언해 5·18의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