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용 배추 산지로 유명한 전남 장성군 남면의 배추밭. 12일 찾은 장성군의 농민 주영배(46)씨의 4만여㎡(약 1만2000평) 밭에는 키가 채 20㎝가 안 되고 속도 덜 들어찬 배추들이 가득했다. 여느 해 같으면 키가 30㎝ 남짓까지 자라고 배추 속이 차야 하지만 태풍 때문에 파종이 보름가량 늦어진 결과다. 10여 년째 배추농사를 지었다는 주씨는 “김장철이 한 달밖에 안 남았는데 그때까지 속이 제대로 찰지 모르겠다”며 “올해는 태풍에 가뭄, 이른 추위까지 겹쳐 최근 몇 년간 배추농사 중 최악의 작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배추밭 3.3㎡당 3000~4000원에 넘겼지만 올해는 1만5000원 안팎에 팔린다”며 “산지 값이 뛴 만큼 김장철 배추값도 지난해보다 서너 배는 오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김장배추 가격에 비상이 걸렸다. 태풍 볼라벤과 산바, 가을 가뭄, 여기에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추위 등 3중고로 작황이 부진하다. 전남 장성과 해남, 무안은 김장용으로 쓰는 가을배추의 최대 산지로 꼽힌다. 이들 지역에선 보통 8월 말에 배추 씨를 파종해 김장철에 맞춰 11월 중순쯤 수확한다. 하지만 올해는 8월 하순에 심었던 배추묘가 태풍 볼라벤·덴빈·산바의 피해를 입어 밭을 갈아엎고 9월 중순쯤 다시 심었다. 이 때문에 90일 정도 걸리는 배추의 생육기간을 감안하면 12월에나 정상적인 수확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와 함께 김장에 쓰는 가을무의 파종도 함께 늦어졌다.
여기에 올해는 배추 속이 여무는 데 필수적인 가을비까지 적어 농가의 애를 태우고 있다. 또 여느 해와 달리 여름 직후부터 아침저녁 기온이 쑥 내려가면서 배추 생장이 더욱 늦어지고 있다. 주영배씨는 “가을 가뭄 때문에 스프링클러로 하루 물 주는 비용만 30만원씩 들어 원가 부담이 높아졌다. 아직 속도 안 찼는데 11월 중순부터는 날씨가 더 추워진다는 예보가 있어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올해는 재배면적도 줄었다. 지난해 가을배추 가격이 폭락하면서 배추를 심은 농가가 대폭 감소한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 가을배추 재배면적은 1억3478㎡로 지난해보다 22% 줄었다.
특히 가을배추 주산지인 호남 지역의 재배면적 감소량이 31%로 가장 많다. 충청지역도 지난해보다 재배면적이 20% 정도 줄었다. 그 결과 올해 11월 배추 출하량이 지난해보다 36%가량 적을 것이란 게 농촌경제연구원의 전망이다. 이천일 농식품부 유통정책관은 “계약재배 물량을 10만t 이상으로 확대해 가격 안정을 유도할 것”이라며 “가격 급등 신호에 조기 대응하기 위한 상황실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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