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영국의 한 여류 무명작가가 아동용 장르소설을 출간했다. 초판 500부로 시작된 이 책은 이후 67개 언어로 번역되며 4억 50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이게 끝이 아니다. 영화, 게임, 음악, 광고, 인터넷, 완구 및 캐릭터상품, 패션, 교육, 관광, 스포츠 등 문화와 서비스산업, 그리고 제조업까지 산업 전 분야에 걸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1997년부터 2006년까지 이 책이 벌어들인 돈은 308조원으로, 같은 시기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총액 231억 달러를 훨씬 능가했다. 지난 10여 년간 영국을 먹여 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이 책은 짐작하다시피 ‘해리포터 시리즈’다.
창조경제의 다른 말은 바로 스토리노믹스(storinomics)!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책’이, ‘출판’이 창조경제의 핵심이죠. 창조경제의 양대 가치가 창의성과 상상력인데, 출판을 제외하고 그 둘을 논할 수가 없어요. 출판산업의 시각에서 창조경제란 ‘스토리노믹스(storinomics)’에 다름 아닙니다. 해리포터의 예처럼, 이야기를 통해 막대한 부가가치가 창출도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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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
서울 방화동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만난 이재호 원장은 창조경제에서 출판(책)의 중요성을 묻자 쉴새없이 답변을 쏟아냈다. 이 원장의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됐다.
“E.T., 쥐라기공원으로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자신의 창조성과 상상력이 책에서 나왔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책이라는 원천콘텐츠(main source)에서 다양한 콘텐츠(multi-use)가 파생된다는 거죠. 저는 출판산업을 창조경제의 기간산업, 핵심산업에 포함시켜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출판문화산업의 진흥·발전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를 모태로 지난해 7월 27일 출범했다.
직원수가 50명 남짓하고 예산도 얼마 안 되는 작은 조직이다. 그러나 이 원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요즘 전에 없는 활력에 차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가 조직은 작아도 대한민국의 출판·독서 진흥을 담당하는 유일한 공공기관입니다. 또 새정부의 국정기조가 창조경제, 문화융성으로 저희같이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고무적입니다. 뭔가 열정을 북돋워 준다고나 할까요!”
“책이 일자리다”…북소믈리에 등 신규 일자리 창출 앞장설 터
이 원장은 창조경제 구현을 뒷받침하기 위한 진흥원의 세 가지 실천 방안을 밝혔다. 그 첫째는 일자리 창출이다. 이를 위해 독서 가이드를 위한 실버 독서리더(북소믈리에) 양성 등 신규 일자리를 늘릴 계획이다.
“저희 진흥원의 올해 슬로건은 “책이 일자리다”입니다. 실제 매출과 고용면에서 볼 때 출판산업이 콘텐츠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3에 달합니다. 책이, 출판이 살면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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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원장은 책을 떠나 창조경제를 생각할 수 없다며 ‘책=창조경제’를 강조했다. |
둘째는 창의콘텐츠 스토리산업 진흥이다. 이를 위해 1인 및 중소출판사 집중 지원, 기획 및 원고단계 지원 등 우수 콘텐츠 발굴과 및 창작열기 고조에 집중할 계획이다. 아울러 ‘케이 북’ 즉, ‘출판 한류’ 확산을 위해 출판수출지원센터를 운영, 중소출판사의 출판수출을 지원할 예정이다.
마지막은 ‘책의 가치’ 확산이다. 이 원장은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책 읽는 독자’가 많아야 문화가 융성하게 되고 창조경제로 갈 수 있다”며 “진흥원에서는 ‘책의 가치’ 확산을 바탕에 두고 모든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판문화 진흥, 업계 협업 통한 상생관계 구축과 공조 필요
이와 관련해 이 원장은 최근 출판계의 뜨거운 관심사인 ‘도서정가제’ 개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했다.
“지난 2011년 호주정부가 추진한 출판산업 혁신전략을 보면 혁신을 위해서는 협력과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지요. 출판문화 진흥을 위해 우리 업계도 협업을 통한 상생 관계 구축과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공조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더해 이 원장은 “책이 갖는 공공재적인 성격을 고려해 단순히 경제적 가치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문화진흥적이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출판시장의 문제를 바라봐야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뷰 말미, 이 원장은 감명깊게 읽은 책이나 추천할만한 도서를 소개해 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모든 책이 다 해당된다”며 완곡히 손사레를 쳤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 세상의 모든 책이 다 소중하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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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의 손톱 밑 가시부터 하나하나 제거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러다보면 우리 출판산업의 문제들이 해결되겠죠!” |
“이달 출판산업종합지원센터가 개원합니다. 여기서 출판인들의 민원을 매일 경청하며, 출판과 관련된 ‘손톱 밑 가시’부터 하나하나 제거해 나갈 생각입니다. 아울러 출판기금 조성도 차질없이 진행하고, 2단지 사업을 추진 중인 파주출판도시 활성화 방안도 마련하고….”
인터뷰 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아직 첫돌도 안 지난 신생 조직이라 이름마저 낯설었다. 그러나 인터뷰 후 바라본 진흥원의 모습은 어느새 ‘뿌리 깊은 나무’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에서 꽃(문화융성)이 피고, 열매(창조경제)가 맺는 즐거운 상상을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