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김정일은 조총련과 일본 좌파도 붕괴시켰다. 양길영 2012-12-04 15:13:00
일본 납치자구출협회 니시오카 회장과의 단독 인터뷰
 
A: 일본인인데도 누가 귀띔해주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로 한국어를 잘한다. 한국어는 어디서 어떻게 배우게 됐나?

 
B: 1977년에 연세대학교에서 유학을 했다. 학부 3학년 교환 유학생으로 왔었다. 1년 동안 서울에서 지냈다. 그때가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 또한 일본에서 요코다 메구미가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당할 년대였다. 유학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가서 국립쭈구바대학에서 한반도연구를 전문했다, 그 후 다시 일본 대사관 문화연구원으로 1982년부터 84년까지 2년 동안 서울에서 근무했다. 그때는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A: 현재 일본에서 납치자구출협회 회장으로 계신다. 고이즈미총리가 북한 가서 정상회담까지 한 것을 뒤집어 놓은 유명한 민간단체, 여론이 정치를 이긴다는 것을 보여준 일본 국민의 NGO이기도 하다. 구출회에 대해 잠깐 설명해달라

 
B: 구출회가 뒤집은 것이 아니라 김정일 스스로가 국교정상회담 분위기를 바꾸었다. 납치범죄를 제 입으로 사죄를 했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이 경악했고, 그래서 결과가 뒤집어진 것이다. 우리 구출회의 정식 명칭은 "북한에 의해서 납치된 일본인들을 구출하기 위한 전국협의회" 약칭 “구출회”이다. 1997년에 만들어졌다. 그때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범죄가 공론화되면서 제일 먼저 납치자피해가족회가 생겼다.
 
그 조직은 납치자 피해가족들 당사자들의 모임이다.  전문가들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다음엔 우리가 구출회를 만들었다. 그때부터 회장 대행으로 일하다가 4년 전부터 회장됐다. 그때부터 가족회와 우리 구출회는 15년 동안 쭉 같이 일하게 됐다. 

 
A: 북한이 납치했다는 것을 언제, 어떤 계기로 알게됐나?

 
B: 일본 학자로서는 내가 제일 먼저 북한에 의해 일본인들이 납치됐다는 논문을 썼다. 그때가 91년도이다. 논문을 쓴 계기는 KAL기 폭파사건의 김현희, 1985년도 신광수사건 때문이다. 일본 공안관계자는 80년대 중반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일본 학자들도 몇 명은 90년대 초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공개적으로 발언하면 테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침묵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논문을 썼다. 그랬더니 친구들이 신변의 위협이 없는가? 걱정을 많이 하더라. 실제 협박편지도 받았다.

 
A: 금방 신광수사건이라고 했는데 우리 국민들은 김현희는 잘 알지만 신광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좀 설명해줄 수 없나?
 
 
B: 신광수는 북한인인데 하라 다다아끼란 일본인 이름으로 일본에서 활동했다. 원래 그 이름의 일본인은 오사카에서 조총련계 조선인이 하는 중국집 요리사였다. 그런데 80년에 갑자기 행방불명 됐다. 이후 신광수가 나타나서 이 일본인 이름으로 여권이며 심지어 보험까지 위장해서 5년 동안 일본에서 살았다. 그 여권이나 기타 문서들은 북한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진짜 하라 다다아끼의 것었다. 그러다가 85년에 위장한 그 여권을 갖고 서울에 왔다. 여기 지하조직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국정원에서 이미 그 지하조직에 대해 파악하고 있던 중이어서 신광수가 잡히고 말았다.
 
A: 그럼 신광수를 통해 북한의 납치범죄에 대해 좀 더 많은 증거들을 확보할 수 있었을텐데,,,
 
B: 90년대 쯤 한국 좌파들이 인권보호 차원이라며 비전향장기수들의 북송을 추진했다. 당시 "말"이란 잡지사에서 특히 더 했다. 원래 신광수는 비전향장기수라는 개념으로 분류 될 인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북한 정권이 신광수가 체포됐을 때 북한 사람이 아니라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자작극이라고 했다. 그러면 장기수가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한국 정부가 북송시켜 버렸다.
 
그때 우리 구출회가 한국 대사관에 가서 항의했다. 신광수는 납치피해자들인 메구미와 지무라 씨 부부에게 간첩교육을 주었던 장본인이다. 현재 일본에 온 미군병사 젠킨슨씨 부인도 신광수가 교육을 했다. 지무라 씨 부부같은 경우 신광수가 직접 납치까지 했다. 엄연히 범죄자이다. 북한 정권이 자기 공민이 아니라는 사람을 왜 돌려보내나? 일본 정부도 경찰 관계자까지 보내서 인도요청을 했는데 한국 정부가 거부했다.
 
TAG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